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다시 읽다.

“다시” 읽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니,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외에는 모든 게 새롭다. 아마도 읽지 않고, 읽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고, 읽기는 했으나, 번역투의 현란하면서도 지루한 설명에 꾸역 꾸역 페이지만 넘겼을 수도 있다.

“에밀 씽클레어의 어릴 적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었다는 것도 새롭고, 데미안이란 이 소설이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의 그림자가 뚜렷하다는 것도, 아브락사스(또는 아브라삭스)를 찾아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데미안이란 이름 자체도 데미우르고스라는 물질세계를 창조했다고 여겨지는 신의 이름에세 따왔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의 서언으로 다시 돌아와서 발견한 한 문장이 이 소설의 내용을 아우른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고, 그 길을 찾아보려는 시도이며, 오솔길을 찾아가는 암시이다.

Each man’s life represents a road toward
himself, an attempt at such a road, the intimation of a path.

인생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삶이란 그 길 위의 한 가지 시도이며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러 경로 중에 한 가지를 찾는 실마리이다.

 

표현의 기술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 서점에서 발견한 책. 유시민의 신작, “표현의 기술”이다. 서점 주인 말씀이 유시민 책은 나오기만 하면 아주 잘 나간다면서 이 분은 책이나 계속 쓰면 좋을텐데, 왜 정치한다고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셨다. 그 말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유시민의 책을 거의 모두 사기는 했던 것 같다. 유시민이 생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둔 것은 한국정치에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겠지만 출판계에는 플러스가 되는 일이겠고, 독자로서 그의 책을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일이니 독자로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인데, 유시민이 정치를 그만두게 된 이유말이다. 그건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그 이후의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대중에 대한 분노, 실망 그런 마음이 가장 큰 축이 아닐까. 어쩌면 자칭 자유주의자로서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주류로서의 모든 배경을 가진 사람이, 주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으며, 권력욕 이상의 그 무엇인가(희생? 봉사?)를 위한 정치를, 도저히 답이 없어보이는 대중을 위해 계속 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할만큼 했다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한 번뿐인 인생,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 때도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