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가 Netflix에 올라왔길래, 예고편을 봤는데, 공효진에 강하늘. 게다가 촌놈 강하늘이라니. 뭐야 명품구두 신겨서 밭 일시키는 기분이랄까. 미혼모에 잘 생긴 촌놈 총각이라니…

이게 말이 돼?, 이거 뭐야 하고 안 보고 있었는데, 배경이 되는 동네 옥산이란 곳이 뭔가 익숙하다. 그래서 살펴봤더니, 작년에 다녀온 “구룡포 근대문화역사 거리”다. 배경이 반가와서 별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근래 내가 봤던 드라마 중에 최고다.

여성주의가 살짝 뿌려진 로맨틱 코미디에 스릴러가 가당키나 하나? 잘 생긴 촌놈 총각에다가가 8살 사내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 이야기가 궁상맞지 않기가 가능이나 할까? 작가가 천재인 듯.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것들이 잘 버무려진 정말 잘 만든 드라마다. 게다가 덤으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쳐주기까지 한다. 제대로 사랑하는 법.

나는 왜 떠나나

지난 10년 간의 케터링(Kettering) 대학에서의 생활을 정리한다. 내년 1월부터 University of Michigan–Dearborn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고민이 없지 않았지만, 크게 망설이지는 않았다.

고민의 이유는 몇 가지였다.

하나는 큰 아들이 아직 케터링을 다니고 있다. 교직원 혜택으로 학비의 98%를 지원받기 때문에 그동안은 2%의 등록금만 내면 되었지만, 내가 떠나고 나면 남은 세 학기 동안은 약간의 장학금을 제외하고 나머지 등록금을 모두 내야한다.

다른 하나는 직급 문제. 현재 나는 부교수(Associate Professor)로서 정년보장(tenured)을 받은 상태이지만, 지금 옮기는 학교에서는 조교수(Assistant Professor)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년보장의 조기신청을 약속받기는 했지만, 교수들의 가장 큰 부담인 정년보장을 받기 위한 노력을 다시 해야한다는 문제였다.

학비 문제는 새로 옮기는 학교에서 2년간 여름학기 두 달치 월급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어떻게 해보기로 했지만, 정년보장의 달콤함은 떨쳐버리기가 쉬운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정교수(Full Professor) 신청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고, 또 다시 조교수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정년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과, 새로 시작하게 되면 약간의 startup 자금을 받게되니, 그것으로 연구실을 다시 잘 만들어가면 될 것이라 스스로를 토닥였다.

학교를 옮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연구환경이다. 케터링처럼 학생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학교는 신입생 수가 어느 수준이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몇 년간은 경제상황이 좋은 상태에서도 신입생 수가 감소하고 있고, 상황이 앞으로도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여러가지 긴축정책을 펼치게 되고, 그런 작업들이 요 근래 몇 년간 진행되고 있다. Professor of Practic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정년보장이 되지 않는 교수직을 만들었고, 퇴직한 교수들의 자리를 강사 또는 비정년교수로 채우고 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교수당 수업시간을 늘이려고 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체적으로 수업 부담을 늘여감으로써 연구할 수는 여건이 점점 안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벌써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지만,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직 연구자로서의 욕심이 내 안에 남아있고,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디가서 하기가 내 스스로가 부끄럽고, 남들처럼 제대로 된 연구를 해서, 인용지수가 높은 논문을 쓰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들이 나를 움직이는지 찬찬히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의 경험을 다시 돌아보고, 연구자로서 연구실 관리자로서 내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고민해보고, 새 연구실도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새 연구실의 이름은 비미(BIMI-Bio Inspired Machine Intelligence) 연구실이다. 우리말로는 생체기계지능 연구실이라고 할 작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뇌활동의 모델링을 기반으로 기계지능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