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살던 집

결혼해서 독립한 이후에 가장 오래 산 집이 지금 살고 있는 Grand Blanc 집이다. 한국에서 살았던 마지막 집인 파주 교하의 아파트가 아마도 두번째로 오래 살았던 집인데, 다섯 해도 채우지 못했다.

30대 중반에 유학을 와서 40이 되어 학위를 받고 첫 직장을 시작하면서 지금 이 집을 샀다. 다운페이할 돈이 하나도 없어서 은행 감정가 전액을 대출 받고, 그 대출에 대한 보험까지 사야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진이 채 끝나지 않은 때라, 주택 가격이 많이 낮아서, 침실 세 개짜리 아파트의 한달 임대료보다 적은 돈으로도 모기지, 세금, 주택보험이 가능했던 때라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 다만, 정년보장 심사를 받기 전이라, 자칫하면 다시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가야할 수도 있었지만, 아내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나의 미래를 전적으로 신뢰했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다.

짐을 빼고 나니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생각이 더 난다.

처음 왔을 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이제 둘 다 대학생이 되었다. 이 집은 그 과정을 하나 하나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커가는 아이들의 키를 그려놓은 것도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나를 돌아보니, 내 40대가 온전히 여기 묻혀있다. 직장에 적응하고, 개인적인 어려움들로 힘들어 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들이 방마다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한국에 갔던 기억도 남아있다. 큰 형이 한 번 왔다 갔고, 어머니와 장인 어른도 한번 다녀 가셨고, 아이들의 기특한 대학 입학도 여기 이 집에서 모두 일어났다.

새로운 직장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당분간 혼자 아파트 생활을 하려던 계획은 COVID-19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변경이 되었다. COVID가 한창인 지금이 오히려 이사하고 정리하고, 새로 자리 잡을 시간을 가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이사를 계획했다. 직장이 위치한 Dearborn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고, 지난 7월에 시작한 이사 준비는 이제 그 막바지에 도달했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좋은 기억이 아주 많아, 힘든 일을 다 덮고도 남는 이 집에 대한 추억은 이제 묻고, 새 곳에서 새로운 기운으로 50대를 시작하자. 10년만큼은 더 현명해 지고, 인생을 더 알차고, 바르고, 제대로 살기위해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