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지은( 再造之恩)

“한국전쟁 때 우리를 구해준 미국과 굳건한 한미동맹 어쩌구” 외치는 사람들 보면…

조선 시대 때, 임란 후에 재조지은( 再造之恩) 부르짖으며 후금/청나라 개무시하다가 두 차례 호란( 정묘, 병자)을 야기한 당시 집권 세력이 떠오르지.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아홉 번 절하고 신하가 되기를 맹세하는 굴욕을 당하고, 전사자 3만, 포로 60만 (호란 전에 3백 8십만 이던 조선 인구의 13%에 해당)이 끌려 갔다네.

안보는 “한미동맹 강화, 선제 타격, THAAD 배치” 같은 공허한 (미국이 호응하지 않으면 어차피 안되는) 구호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국방력 강화 (2017년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11위까지 떨어졌던 국방력 순위는 꾸준히 올라 현재 6위!),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으로 이룰 수 있는 것.

대통령 선거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의 추세가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 같지 않아서 속상하다. 역대 최악의 후보를 내세운 국민의 힘을 압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돌이켜보면, 민주당 계열의 후보가 당선될 때 한번도 쉽게 된 적이 없다. 우주의 온 기운이 한 군데에 모여야 겨우 일어날까 말까 하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대 대선을 탄핵의 여파로 손쉽게 승리를 얻었다고 기억하겠지만, 정확히는 문재인 후보 41.09%, 홍준표의 24.04%와 안철수의 21.42%를 합치면 45.46%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이루어진 선거에서도 이랬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16대 대선. 노무현 48.91%, 이회창 46.59%.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 후, 정몽준의 단일화 파기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단일후보로 나선 노무현과 이회창의 차이는 불과 2.3%차이였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에서 최초의 대통령이 나왔던 15대 대선. 1997년 12월 18일에 치러졌다. 불과 2주 전인 12월 3일에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굴지의 대기업들의 연쇄도산과 그 여파로 대한민국의 이른바 국가부도 사태가 일어났던 때이다. 김영삼 정부가 나라 경제를 벼랑 끝까지 몰고간 상태였다. 선거결과는 김대중 후보의 압도적 승리였을까? 그와는 정반대였다.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출마를 선택한 이인제 후보가 19.21%를 득표하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38.75%. 이 둘의 득표율을 합치면 57.96%이다. IMF 환란을 일으킨 집권당의 후보들에게 60%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선거직전 여론조사에서 20% 가까운 우위를 보였던 김대중 후보는, 그것으로도 안심이 안되어서 이른바 DJP 연합을 결성, 김종필에게 일종의 공동정부 구성을 약속한 상태에서 치른 대선이었다.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최종 득표율 차이는 불과 1.52%였다. IMF 환란 + 이인제 독자 출마 + DJP 연합이라는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우주적 이벤트가 벌어진 상태에서도 1.52% 차이로 가까스로 김대중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보자. 민주당 후보 입장에서는, 개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흠결,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 환경,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아직까지 이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며, 선거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1~2% 차이일 것이다. 한 표 한 표가 소중하니, 투표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진인사 대천명하면 된다.

강물이 가까이서 보면 이리 저리 굽이쳐 흐르지만 크게 보면 어차피 다 바다로 간다.

정신차려 우파

히틀러의 나치당은 선거를 통해 독일 의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나치당 단독으로 히틀러가 총리가 되기는 어려웠다. 히틀러를 총리 자리에 앉힌 것은 <프란츠 폰 파펜>을 필두로 한 독일의 우파 정치인들이었다.

히틀러를 얕잡아 본 독일 우파들은 히틀러가 차지한 권력이 곧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히틀러에게 막강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안겨준다. 이른바 전권 위임법.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나치당의 히틀러는 지방의회 해산하고 사민당을 불법화하고, 결국 바이마르 공화국은 종말을 맞이한다.


국민의 힘의 이른바 우파들은 윤석열을 정권교체의 도구로 이용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윤석열 뒤에서 자신들이 호가호위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무지하지만 남의 말을 잘 들어본 적이 없는 윤석열이 꾸릴 정부는 어떤 정부가 될 지 예측이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그를 꼭두각시로 쉽게 부릴 수 있을 지는 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