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인정하자. 민주당 후보가 이기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태양계 행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순간 같은 것이다.

IMF 구제 금융을 가져온 경제 파탄, 후보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경선불복 후 독자 출마한 여당 후보, 자유민주연합이라는 김종필 세력과 연대, 이 모든 환경에서 김대중 후보를 내세우고 1.6% 차이로 신승을 했다.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인터넷 활성화, 노사모의 열성적 지지까지 등에 업고 치른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2.3% 차이로 경우 승리.

탄핵의 바람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손쉬운 승리를 이룬 것 같은 문재인 후보는 2위와 3위의 표 합산 (45.4%)에 뒤진 41.1%의 득표로 당선이 되었다.

이번 제 20대 선거에서는 그야말로 일대일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쳤지만 0.73% 차이로 졌다. 자격 미달의 상대 후보가 나와도 일대일로 붙어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기적이란 아주 가끔 일어나니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진인사 하고 대천명 했으나 0.73% 만큼의 기운이 덜 모였을 뿐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릴 필요는 없는거다. 그러니, 탓할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아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통을 떠뜨리지는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면 고마운 일이지.

맞짱

대통령 선거에서 일 대 일로 맞장을 뜨면 언제나처럼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다.

돌이켜보면 직선제 개헌 쟁취 후, 삼당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 계열의 세력과 맞붙은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일 대 일로 붙어서 이긴 적은 없었다.

  1.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과 연대 + 이인제의 독자출마가 있었다.
  2. 노무현 대통령은 막판에 단일화를 파기하긴 했지만 정몽준 세력과 단일화가 있었고,
  3.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이란 사상 초유의 일이 있어서 홍준표를 크게 이겼지만, 홍준표 + 안철수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이라 진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라는 구호를 덮을만큼 큰 다른 의제 설정에 실패했고, 맞장을 떠도 어쩌면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해서라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는 윤석열이란 허술한 후보가 나와서, 민주당에서 어쩌면 맞장 떠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게 가장 큰 실책이다. 윤석열을 빼고 다른 모든 세력과 광범위한 연대를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고. 맛이 가버린 정의당의 위치도 민주당으로서는 뼈 아프다. 정의당이 더 이상 연대해야 할 세력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구도라면 다음에도 일 대 일 맞장이 불가피한데, 새로운 정부가 어떤 종류의 실정을 하더라도 다음 대선에서는 또 다시 힘겨운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윤석열이 아니라 홍준표가 올라왔다면 더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거다. 후보가 윤석열이라 그나마 이렇게 깻잎 한 장 차이로 석패를 한 거다.

맞장떠서 이기기에는 아직도 기득권 카르텔이 견고하다. 이른바 강남 3구의 윤석열 지지율을 보라. 대구/경북 못지 않다.

이만큼 해낸 이재명 후보 수고 많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크게 쓰일 그 순간까지 버티기!!!

20대 대선 결과

새벽 잠이 깨어, 투표율과 개표결과를 초단위로 지켜봤지만,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황망하고 속상하다.

한동안 잔잔한 강물을 만나 경치 구경도 하고, 산들 바람도 맞으며 지냈는데,
눈 앞에 우르릉 쾅쾅 굽이치는 성난 물길이 보이는 것 같다.

굽이치는 구간을 배를 꼭 잡고 뒤집어 지지 않도록 버티면 또 다시 너른 강물을 만나게 될게다.
강은 아무리 굽이쳐도 어차피 바다로 간다.

  • 노태우가 전두환에 이어 선거를 통해 집권을 했지만, 결국 군부를 우리 정치에서 영원히 물러나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
  • 박근혜가 당선이 되었지만, 그를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깊었던 박정희 시대의 막을 내렸다.
  • 이제 검찰권력이 임면권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길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검찰권력의 폐해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어서 마지막 남은 무소불위의 검찰권에 대한 개혁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 감히 예상한다.

다만, 너른 강물 만날 때까지 많이 상하지 않게 되기만 바랄 뿐이다.

어떤 정권으로 교체하느냐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고들 해서, 어떤 정권으로 교체하기를 원하는지 생각해봤다.

윤석열의 지지도가 높게 나오니 “국민의 힘”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기를 바란다는 얘기겠다.
그 세력이 정권을 잡았던 박근혜, 이명박 정권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굵직 굵직한 사건만 나열해 보겠다.

  • 세월호 사건
    총 사망자 299명 실종자 5명. 희생자 대부분이 단원고등학교 학생들로 아이들이 수장되는 현장을 전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본 충격적인 사건.
  • 민간인 국정개입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 국정에 깊숙히 개입해서 정재계, 교육, 의료, 예체능, 안보/군사 분야 등에 영향력을 미쳐 박근혜가 탄핵에 이르게 된 사건
  • 메르스 사태
    중동 호흡기증후군이라도 알려진 메르스로 인해 감염, 사망한 사람의 수는 중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 두 명 감염자에 그쳤으니, 대한민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86명의 감염자와 36명의 사망자를 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봉준호, 박찬욱, 송강호 등 문화 예술인 총 9,473명 (세월호 선언 관련: 1,348명, 문재인 후보 지지: 6,517명, 박원순 후보 지지: 1,68명)의 목록을 만들어, 국정원까지 개입하여 감시, 탄압, 보복, 매장 시켰다.
  •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 사령부 여론조작 사건
    국가의 정보기관과 군이 직접 인터넷 여론 조작을 위해 조직적 활동을 하다가 발각된 사건.
  • 용산참사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재개발 보상관련 농성 진압과정에서 경찰 포함 6명 사망, 30여명 부상
  • 백남기 농민 사망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 가격으로 쓰러지고, 1년 간의 의식불명 상태 후 사망한 사건으로,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아닌 ‘병사’로 기재된 사망원인에 관한 논란.
  • 방송장악과 언론통제
    KBS 정연주 사장 불법 해임, YTN 방송 장악을 통한 언론통제.
  • 노무현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한 정치적 타살. 노무현 추모 시민분향소 철거, 영결식 방해.
  • 김대중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노벨평화상 취소를 위해 공작.
  • 데이비슨 프로젝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비자금을 찾겠다고 국정원의 대북공작금을 유용하여 공작을 펼침. 2년 넘게 지속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함. 최근에 당시 국정원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 미네르바 사건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리먼 브라더스 부실, 환율폭등, 금융위기 등에 관한 글을 다음 아고라 등에 쓰던 박대성이란 사람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 구소했던 사건. 위헌 심판 소송을 통해 최종 무죄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자유로운 분위기로 활성화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게 만든 사건.
  • 4대강 사업 반대파 사찰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 명박산성
  • 천안함 침몰 사건
  • 연평도 포격 사건
  • 소망교회 관련 종교편향

그 동안은 권력의 개 역할에 만족하고 충실하던 검찰이 이번에는 직접 정치권력에 도전하고 나섰다.
주인을 무는 개를 정권교체의 도구로 쓰겠다는 “국민의 힘”도 안쓰럽지만,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분들, 어떤 정권으로 교체되는 것인지는 정말 알고서 원하는 것인지, 진짜 궁금하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쓸모가 없는 법이다.

어떤 정권으로 교체하느냐

정권교체해야 한다고들 한다. 탄핵당한 세력이 5년만에 부할하려고 한다. 어떤 정권으로 교체를 하려고 하는지는 알고라도 투표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 정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략히라도 정리한다.

문재인 정권

  • 1년차: 부동산 대첵, 포항지진, 평창올림픽, 남북정상회담
  • 2년차: 2차, 3차 남북정상회담, 카드수수료 개편, 국민연금 개편, 3기 신도시 계획
  • 3년차: 조국 법무부 장관, 코로나 19 시작
  • 4년차: 재보선 참패
  • 5년차: 한미정상 회담

박근혜 정권

  • 1년차: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 여론 조작 사건
  • 2년차: 통일대박론, 세월호 사고, 초이노믹스, 통합진보당 해산
  • 3년차: 메르스 사태
  • 4년차: 민간인 국정 개입, 탄핵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선관위 디도스, 전교조 해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노벨 평화상 취소 공장, 데이비슨 프로젝트 (국정원 대북 공장금 유용 –> 전직 대통령 비자금 추적 시도), 4대강 사업 반대파 사찰, 종교 편향,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등.

  • 1년차: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 명박 산성, 금강산 관광객 피격, 용산 참사, 방송장악 (KBS 정연주 사장 불법 해임, YTN 장악), 독도 관련 (조금만 기다려 달라 사건)
  • 2년차: 노무현 서거, 영결식 방해, 이건희 특별 사면
  • 3년차: 천안함, 민간인 사찰, 연평도 포격
  • 4년차: 동일본 대지진
  • 5년차: 독도 방문

대통령의 권한

대선 사전투표가 마무리되었고, 3월 9일 본투표가 예정되어 있다. 대통령 선거 투표를 자신의 화풀이 기회로 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자그마한 가게의 사장도 경험없고 무지한 사람이 운영하면 머지 않아 가게 문 닫기 쉽다. 대통령의 무지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어떻게 위험에 빠드릴 수 있는지 지난 박근혜 정부로부터 배우지 않았던가.

대통령이 갖게 되는 권력의 크기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어서 정리해본다.

  • 국군통수권
  • 긴급명령권
  • 긴급재정, 경제처분 또는 명령권
  • 계엄선포권
  • 위헌정당해산제소권
  • 헌법개정안 발안권
  • 국민투표 부의권
  • 법률안 제출 및 공포권
  • 그 밖에 많은 거부권/구성권/임면권

그 밖에도 약 7,000여개의 국가 요직을 임명할 수 있다고 한다.

화풀이로 투표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미래 5년을 책임질 사람을 뽑는 일이다. 잘 뽑자.

정권교체 여론의 허상

여론조사 상으로 나타난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다. 적어도 여론조사 상으로는 그렇다.

부분적으로는 여론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 정치 고관여 층이고 웬만해선 지지를 바꾸지 않을 사람들을 양 진영으로 30% 정도로 잡고, 무관심 층을 10% 정도로 잡자. 그렇다면 이른바 중도층이 30% 정도가 된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방송3사 여론조사의 실제 문항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한 다음의 의견 중 어디에 더 공감이 가십니까?”

(1) 정권 연장을 위해 여당 후보에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

(2)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에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

(9) 모르겠다.


먼저, “연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인상과 “교체”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적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 저관여층인 중도층에게는 (2)번이 더 매력적인 답변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전화면접 방식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런 경향이 강화된다. (1)번 답은 현상유지인데, 뭔가 자신이 세상돌아가는 일에 무지하다는 느낌을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때문에 이른바 무당층에게는 저런 질문 방식에서 (2)번 답변에 답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정권교체 여론과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호불호 여론과의 괴리를 잘 설명해준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질문의 보기는 “매우” 또는 “대체로” 잘하고 있다. “별로” 또는 “전혀” 못하고 있다로 50대 50으로 나눠져 있어서, 정치 저관여층이 “대체로”나 “별로”를 선택할 때 별다는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정권교체 여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국정운영 지지도 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권교체 여론조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어떤 정권교체이냐는 것에 대한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를 위해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야 실제 투표와 가까운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처럼 단순히 정권 연장과 정권 교체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질문으로는 실제로 정권 교체를 원하더라도 다른 후보를 지지하거나, 정권교체를 원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도저히 지지 못하겠다는 여론은 절대로 잡아 낼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여론조사로는 완벽에 가까운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더라도 임기말에 정권교체 여론을 물어보면 최소 50%가 나올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