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것들의 총합이 바로 나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출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래전 읽었던 책을 문득 책장에서 꺼내 둘러보다가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문제에 대한 내 사유(라고 생각했던)가 바로 그 책 안에 그 문장 그대로 써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내가 읽은 것들이 나를 구성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근에 다시 펼쳐든 리차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이 그랬고, 유시민의 책들이 그러했으며, 이영희 선생의 오래고 색 바랜 책들이 그랬다.
학창시절의 강박 때문인지 당장 실질적인 도움이 되거나 적어도 내가 가진 호기심을 채워줄 책들이 아니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정도가 예외적인 경우가 될까.
마음이 힘들면 위로가 될 만한 구절을 찾아 법륜의 책이나 김어준의 인터뷰를 훓고, 평소 관심이 있는 역사서를 팠다. 소설은 좀체로 읽게 되지 않는데 내 삶이 대하소설인데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여간해서는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산문은 말할 것도 없다. 부질없는 언어의 유희 같이 느껴질 때까 많다. 김훈의 남한산성이야 역사소설이니 단숨에 읽어내려갔지만, 그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는 여간해서는 사게될 것 같지 않은 책인데, 어찌된 일인지, 아내가 부탁한 책들을 주문하다가 덜컥 이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산문이라니… 첫 글,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며 책 산 일을 후회하다가 “광야를 달리는 말”을 읽어내려가다가는 내 아버지 생각 때문에 책에 빠져들고, 후회와 몰입의 반복이다. 올 해 읽게 될 처음이자 마지막인 산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