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친위쿠데타 실패로 인해, 현직 대통령이 탄핵 소추될 처지가 되자, 보수의 소멸,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보수가 소멸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새롭게 태어날 기회가 되었다 말하고 싶다.

흔히 보수정당의 뿌리로 이승만의 자유당을 생각하는데,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만든 민주공화당이 그 뿌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4.19혁명으로 역사적 심판을 받고 사라진 당을 자신들의 뿌리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긴 하다. 그 이후,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삼당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다가 현재의 국민의 힘까지 이르고 있다. 김영삼을 시작으로 소위 문민정부가 되면서 애초의 군사반란 세력의 당이라는 색채가 많이 옅어지긴 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뿌리라고 생각하는 정당은 4.19 혁명으로 새롭게 세워진 장면 내각의 민주당이다. 이 민주당은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철저한 반공주의 보수 우익 정당이었다. 자유당 탈당파를 포함한 여러 계파가 모여서 창당한 당이며, 이승만 정부 하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했던 조봉암을 ‘사상이 의심스럽다’면서 배제할만큼 보수 우익 정당이었다. 5.16쿠테타로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해산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건강한 보수정당을 자리에 위치하게되고, 국민의 힘과 같은 내란동조 세력은 소수 정당이 되는 날, 우리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진보 정당이 나타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처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세력이 국정의 한 축으로 존재하는 한, 진보와 보수의 건강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민주당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보수가 재탄생하는 일이니, 이번 탄핵이 완성되면 보수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일기장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즈음이다. 박사학위를 무사히 받고, 직장을 잡아 미시간으로 이사를 하고, 안정을 잡아가던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힘들 때였던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이유는 그 이후 차차 알아가게 되었다. 어쩌면 일기를 쓰게 된 이유도 이것과 연관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때 5학년 때였던가, 이성에 눈뜨기 시작했던 무렵에 썼던 일기장을 나중에 부끄러운 마음에 대부분을 찢어버렸다. 한 동안 쓰지 않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고, 꾸준히는 아니지만, 가끔씩이라도 일기를 끄적거렸던 것은 대학교 다닐 때까지 였던 것 같다.

제일 왼쪽부터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 일기장. “크지 않는 고독”이란 일기장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데, 열쇠도 없거니와, 열어볼 생각도 없다.

그리고 나서는 결혼 생활, 회사 생활,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광풍이 몰아치는 동안에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 일상을 끄적였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종이 일기를 다시 써야지 했던 것은 아마도, 웹사이트 자료라는 게 장기간 유지/보수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것과, 그 무렵 시작한 손가락 관절염 때문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고통스럽기도 하고,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관절염이 더욱 악화될 것 같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키보드 작업을 줄여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 쓰기가 이제 10여년이 넘어가고 있고, 그동안 모아놓은 일기장이 꽤 많은 분량이 되었다. 대부분이 일상의 단상과 넋두리, 또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지만, 뚜렷하지 않은 생각을 글로 옮겨본다는 것이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나서는, 부끄러워서 다시 펼쳐서 읽어보지는 못할지라도 계속 끄적여 나가고 있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형식의 공책. 매일 휴대해야 하다보니, 두꺼운 것보다는 얇은 것, 그리고, 스프링으로 철이 되어 있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해서, 최근에는 단순하고, 작은 것을 이용하고 있다.

일기라는 게 생각의 쓰레기통 같은 것이라, 버리고나면, 열어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얕고, 사악하고, 부끄러운 생각의 쓰레기들이 썩어가며 악취를 풍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다면, 그 중 일부라도 발효된 놈들이 남아 있을까하여, 일단은 서랍 깊숙히 보관하고 있다.

주민등록 신고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 신고를 했다. 안내된 내용에는 신분증과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서만 가져가면 되는 것처럼 나와 있으나, 실제로는 주민등록 신고 주소지의 세대주의 인적사항과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대주와 동행해야 한다. 5월 1일이 다행히, 직장인은 휴일이지만, 공무원은 휴일이 아닌 날이라, 세대주와 함께 주민센터에 방문할 수 있었다.

주민등록증은 기존에 발급받은 것이 있으면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꼭 가져가야 한다. 새 주민등록증 발급은 3 ~ 4주가 소요된다고 한다.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서 받아가야 하며, 대리 수령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내가 직접 방문할 예정이라 자세한 사항은 알아보지 않았다.

주민번호는 기존에 쓰던 번호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영사관 측에서 안내받을 때는 새로운 번호를 발급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항상 기존 번호를 그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바뀔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기존 번호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라면, 기존에 한국에 금융기관 등에 등록된 내 정보를 확인하는데 애를 먹었을 것 같다.

국적회복

여권 신청

3월 8일에 여권 신청을 위해 시카고에 다녀왔다.

일반적인 여권 신청 서류에 추가해서 두 가지 서류가 더 필요했다.

  1. 국적회복 증서 (사본)
  2.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서 (사본)

사진은 영사관 내부에 설치된 사진기로 그 자리에서 무료로 찍을 수가 있었다.

여권 도착

4월 8일에, 마침내 우편으로 여권을 받았다. 2021년 말에 시작한 국적회복 신청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간다. 지난 12월 1일에 국적회복 확인 서류 받고, 다시 2024년 3월 8일에 여권을 신청했고, 한달여 만에 여권을 받았다.

이제 한국 방문해서 주민등록 신고만 하면 모든 단계가 마무리된다. 미국국적 획득으로 잃게되었던 한국 국적을 다시 찾게되니, 기쁘다. 이제 다시 공식적으로 한국인.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갖게되었다. 한국에 작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10년 만의 재수술

    2013년에 축농증 수술 받은 후, 10년 만에 재수술을 받았다. 워낙 재발이 잘 된다고들 했는데, 괜찮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으로 관리를 소홀히 한 면도 있다. 수술비용도 그렇고, 회복 과정도 쉽지가 않다. 앞으로는 잘 관리해서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하자.

    전에는 콧속의 물혹만 제거 했었는데, 이번에는 비중격 성형술(Septoplasty)도 함께 받았다. 콧 속의 물렁뼈가 콧속 염증이나 물혹등의 이유로 휘어져서 코를 통한 공기의 흐름이 원할하지 않게 되는데, 이를 교정해주는 수술이다.

    기능성 내시경 부비동 수술(Functional Endoscopic Sinus Surgery)과 비갑개 점막하 절제술(Submucosal Resection of Nasal Turbinates)도 함께 받았다.

    국적회복

    2023년 12월 1일 시카고 영사관에서 대한민국 국적회복 증서를 수여했다. 만 2년이 걸렸지만,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감개가 무량하다는 표현은 이 때 쓸 수 있을 것 같다.

    국적을 증명할 수 있는 여권이나 주민등록증을 다시 받으려면 아직도 몇 가지 단계가 더 남아 있긴 하지만, 법적으로는 국적회복증서에 찍혀 있는 2023년 12월 1일이 공식적으로 국적이 회복된 날이다.

    법무부에서 대법원으로 국적회복 사실이 통보되면 대법원에서 기본증명서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기본증명서가 완료되면, 그 때는 여권신청도 할 수 있게 된다. 여권이 없는데, 한국에 입국해야 한다면, 미국여권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되면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지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 국적회복 절차에 좀더 촘촘히 세부 사항들이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기본증명서 발급이 언제될 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내년 봄에 디트로이트로 순회영사가 오게되면, 여권발급 신청을 해볼 생각이다.

    한국 국적 회복

    미국시민권 취득 후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되었었다. 고국을 버린다는 느낌과 이제는 한국에 대해 타자가 되어버린다는 느낌 때문에 미국 시민권 취득이 잠시 망설여지기는 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영주할 생각인데, 투표권도 없이, 미국에서 또 다시 타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맞는지 또한 의문이 들었다.

    시민권 취득 후,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여러 번의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한편으론 시민권 취득은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다. 또한 국방관련 과제를 신청할 때, 미국 시민권자로서 제약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 또한 좋은 점이다.

    하지만, 때때로 한국의 국적 제도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외국 국적의 취득이 한국에 대한 일종의 배신 행위로 생각되는 것 같아서다. 30대 중반까지 한국의 성실한 시민으로 국방의 의무를 비롯한 내게 주어진 시민으로서의 의무도 모두 수행했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외국 국적 취득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국적 포기를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해서다.

    그러던 중에 해외우수인재 국적회복 프로그램을 알게되었다. 일정 요건이 충족되는 사람들에게 국적 회복의 기회를 준다는 것. 신청 자격 중에 여러가지 범주가 있지만,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일정 기간 이상의 대학 교수 경력과 연구경력 증빙등을 제출하면, 심사를 통해 국적 회복을 허용해 줄 수 있다는 것.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래도 어찌되었든, 진행이 되어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영사관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연락이 오면, 시카고 영사관에 가서 국민선서와 국적증서를 받으면 된다.

    이제 또 얼마를 기다려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국적 허가 후 1년 내에 국민선서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만큼 그 전에는 되겠지 하고 기대한다. 가능하다면 내년 총선에 투표할 수 있게 그 전에 마무리되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진행 일지

    • 2021년 10월 경: 서류 작업 시작.
    • 2021년 12월 4일: 영사관 방문 후 국적 회복 신청 서류 접수. 서류 인쇄해서 방문 접수만 된다고 해서 영사관 방문.
    • 2022년 1월 21일: 법무부에서 신청 서류 접수 확인 이메일 받음.
    • 2023년 6월 9일: 법무부에서 기존에 낸 서류에 대한 soft-copy 송부를 요청받음. 그 사이에 신청 양식에 변경도 있어서, 서류 재 작성 후, 이메일로 송부.
    • 2023년 10월 11일: 법무부에서 국적 회복 신청이 허가되었으니, 담당 영사관을 통해 국민선서와 국적증서를 받기 위한 안내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음.
    • 2023년 10월 12일: 시카고 영사관 국적과에 문의. 명단과 국적증서를 받지 못한 상태라, 아무 것도 진행할 수 없으니, 영사관에서 연락이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음.

    추가 소식

    • 2023년 11월 6일: 시카고 영사관에서 연락이 옴. 국적회복 신청이 수리되었으며, 국적회복 수여식 진행을 위한 일정을 논의하고 싶다는 내용. 11월 20일 주에 가능하냐고 물어왔는데, 그 주가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라서, 보스턴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서, 다른 날짜로 조정 중. 11월 28일, 30일, 또는 12월 1일이 가능하다고 이메일 보냄.
    • 2023년 11월 7일: 12월 1일 오전으로 잠정적으로 결정. 확정되면 시카고 총 영사관에 가야함.

    ** 추가 소식 ** (2024년 4월 8일)

    • 2023년 12월 1일: 시카고 영사관에서 국적회복 선서 후 국적회복 서류 수령함.
    • 2024년 3월 8일: 시카고 영사관에 여권신청을 위해 방문. (추가서류: 국적회복증서외국국적 불행사 서약 확인서 가져가야 함)
    • 2024년 4월 8일: 여권 우편으로 수령함.

    ** 추가 소식 ** (2024년 5월 1일)

    • 2024년 4월 30일: 한국 방문
    • 2024년 5월 1일: 주민센터에 방문해서 주민등록 신고. 안내서에는 신분증외국국적 불행사 서약 확인서만 갖고 가면 된다고 되어 있으나, 주민등록 신고시, 해당 주소의 세대주와 동행해야 한다. 주민등록 신고시, 그 주소지 세대주의 인적정보와 서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달 짜리 임시 신분증 (주민등록증을 신청한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는)을 발급받을 수 있다. 여권대신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존의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다면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가져가야 한다. 새 주민등록증 발급까지는 3 ~ 4주가 소요된다고 한다.

    IROS 2023

    로봇공학 학회 중에서 유명한 것 두 개가 있다. ICRA와 IROS. 올 해 IROS가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된다고 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참석하기로 하고, 급하게 논문을 두 개 제출했다. 운이 좋게도 그 중에 하나가 받아들여져서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학회 참석을 자제해왔는데, 오래 간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연구를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IBRO 2023 참석과 그라나다 방문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IBRO 2023 학회. 학회의 규모는 SfN에 비한다면 아기자기한 정도. 아무래도 응용연구보다는 의학적 뇌연구 분야에 집중된 느낌이고, 뇌연구와 접합된 로보틱스 분야의 내용은 별로 없었다.

    스페인 방문은 처음인데, 몇 달 전부터 시작한 스페인어 공부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날씨는, 햇살을 뜨겁지만 습기는 없어 그늘에만 들어가면 금방 시원해졌다.

    오래된 도시의 숨결을 유지한 아름다운 도시.

    한국 수퍼마켓도 아닌데, 한글 간판에 한국라면과 술, 그리고 김치.

    그리고 절대 빼먹을 수 없는 곳. 중앙시장 – 산 아구스틴.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조리해주는데, 정말 맛이 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나면 문을 닫기 때문에 일찍 서둘러야 하고, 저녁 식사는 할 수 없다. 음식의 간이 한국 사람 입맛에 딱 적당하다. 너무 짜지도 너무 달지도 않게 맛이 있다. 토마토를 비롯한 야채의 맛도 정말 좋다. 도시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어디를 가나 기본적으로 맛이 있다.

    단 한군데 예외가 있었는데, 중동풍의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았는데, 술이라도 팔면 안주삼아 견뎌보려 했는데, 술도 팔지 않고, 무알콜 맥주를 파는데, 차라리 콜라가 낫지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라나다 공항까지 이른 시간이었지만, 미리 보아둔 택시 정거장 덕분에 제 때 도착했다. 하지만 그라나다에서 출발이 늦어져 마드리드에서 연결편 탑승까지 빠듯한 시간 때문에 공항을 달리다시피해서 겨우 겨우 마드리드발 시카고 행 비행기에 탑승. 시카고에 내려서 짐을 찾으려하니, 도착하지 않았다. 아마도 마드리드 공항에서 제때 시카고행 비행기에 실리지 못했던 것 같다. 다음부터는 특히 국제선의 경우에는 연결편 시간에 여유를 좀 많이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행히 짐은 이틀 뒤에 하나, 나흘 뒤에 또 하나 이렇게 해서 집에 잘 도착했다.

    가기 전에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유로화 굳이 가져갈 필요없이, 어디서나 신용카드를 쓸 수 있었다. ATM기도 많이 보여서, 급하면 찾아쓰면 되기때문에 유로화 환전 불필요. 그리고, 신용카드는 마스터와 비자 둘 중 하나는 꼭 챙겨가야 한다. Amex같은 미국 카드는 안받는다.

    Boston으로 이사하는 바다

    2023년 가을학기부터 Northeastern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는 바다. 이사 방법을 여러가지로 고민해봤는데, U-Haul 트럭이 생각보다 비싸서, 그 대신에 mini-van을 빌려서 운전해서 가기로 하다.

    하루 반을 꼬박 달려 보스턴에 바다의 아파트에 도착.

    짐을 정리하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 ‘소주바’라는 한국식 식당. 한국의 여느 술집 같이 다양한 안주와 한국 술을 판다.

    새로운 도시와 학교에 잘 적응해서 학업을 잘 마치고, 다음 꿈을 향해 또 다시 달려갈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