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위쪽 반도

UP (Upper Peninsula)라고 불리는 미시간 북쪽의 Munising이란 도시에 다녀왔다. 미시간에 10년 넘게 있었지만, Mackinac 다리 건너 UP에 올라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근처에 Pictured Rocks라는 국립 공원과 trail들이 많이 있어서, 덥지 않은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여름 휴가지로 아주 좋다.

한국 방문

어머니가 폐렴으로 고생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한 달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폐렴 약의 부작용으로 얼굴도 많이 부어서 맘이 좋지 않다. 어머니와 동구릉 산책.

한국에 머무는 동안 신세를 진 선릉역 사무실. 주변을 살펴보니, 20여년 전에 다녔던 퀄컴 사무실이 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다섯 형제 자매가 모두 모여 고향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다.

캐나다 여행

디트로이트에서 좁은 강을 건너면 바로 캐나다. 이쪽으로 국경을 건너 캐나다로 가 본 적은 없었다. 전에 나이아가로 폭포 여행을 갈 때는 69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었다. 이번에는 Erie 호수 가에 있는 Point Pelee National Park 근처에 숙소를 잡고, 며칠 쉬다 오기로 했다. 미국 쪽으로 뾰족하게 나와 있는 부분으로 캐나다 본토 중에서 미국 쪽으로 가장 많이 내려와 있는 곳이라도 했다.

Furnace 수리 일지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heater에서 찬 바람이 나온다. Furnace를 확인해보니, 불길이 보이지 않는다.

불길이 안 보인다.

빨간색으로 반짝이는 LED 불빛을 확인해보니, 짧게 세 번, 길게 네 번. Error Code 3-4: Ignition proving failure.

“Control will try three more times before lockout #1-4 will occur. If the flame signal is lost after the trial for ignition period, the blower will come on for a 90 second recycle delay. Check for: build-up on the flame sensor; proper microamp distribution to the flame sensor; defective gas valve or turned off gas valve; faulty hot surface ignitor; low inlet gas pressure; the manual valve is shut-off; continuity of control ground; low flame carryover or rough ignition; ungrounded flame sensor.”

검색해보니, 제일 흔한 원인이 flame sensor 표면이 더러워져서 sensor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경우. 분리해서 확인해 보니, 상태가 나쁘지 않다. 표면을 깨끗이 닦아내고, 다시 설치.

flame sensor

YouTube에 검색해보니, 불이 붙는 부분에 igniter라는 것이 빨갛에 달아오른 것이 보인다. 우리 집 furnace를 확인해보니 불빛이 아예보이지 않는다. 분리해서 확인해보니, 손상된 부분이 보인다.

Amazon에서 부품 검색하니 $20. https://www.amazon.com/Repairwares-Universal-AP2042796-WE04X0750-Bracketless/dp/B07FCJLYDZ

다행히 요 며칠 아주 춥지는 않아서, 집에 있던 이동형 radiator heater로 이틀 버팀. 마침내 도착한 igniter를 교체하니, 불길이 활활~~

igniter 재 설치!

CES 2023

올해도 CES 참석. 작년에는 코로나 변이종의 확산 여파로 많은 대기업들이 참석을 취소했다. 올해는 거의 정상화한 것 같다. 항상 신년에 시작하는 일정이라, 학교 개강 일정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 일정 조정이 쉽지는 않지만, 업계동향 파악 + 정기적 여행 목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참석하려고 한다. 작년부터는 아내도 함께 동행. 서부쪽에 있는 아내친구와 일정을 맞춰 라스베가스에서 만남을 갖는다.

올 해는 Jon Deere라는 농기계 회사가 기조 연설자 중 하나로 나왔다. 농기계도 이제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지능화한 기계가 되어 전자제품화 하고 있다는 뜻일게다.

지금은 LG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강원. LG 전자 기술원 야구부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반갑게도 먼 타국에서 만났다. 늘 변함없이 열심히 살고, 배울 점이 참 많은 친구다.

전시장에서 Funzin이란 회사를 찾았는데, 학교 후배가 하는 회사라고 해서 들렀다. 학번 차이가 좀 나서 학교에서는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수다를 좀 떨다가, 기념 사진.

놀랍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까지 떨어졌다고 호들갑이다. 호들갑을 떠는 게 나는 더 놀랍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기대는 있었다. 이전 이명박 정부같이 이른바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사사로운 이득을 챙기기 위해 국가권력과 시스템을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박근혜에게는 그 믿음이 옳든 그르든 간에 최소한 오늘의 한국이 자기 아버지가 일으킨 나라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고자 하는 욕심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자기 능력에 넘치는 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으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서원이라는 사인에게 넘겨서 국가를 운영하다가 탄핵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에게는 애초에 이런 기대조차 없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권 교체의 구호만 높았지, 교체한 정권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사람에게 단 몇 달 만에 세상을 다른 식으로 바라볼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평생을 돈벌이에 몰두해 살아온 이명박 정권에게 공적인 마음을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었던 것처럼 말이다. 국정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옳고, 다른 한 쪽은 일방적으로 그른 식이 아니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에 정원을 늘려주면, 지방대의 몰락이 가속화하는 것도 가까운 일례다. 방폐장을 건설은 시급한 일이고, 전 국민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방폐장이 건설될 지역에서는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 운영에는 고도의 정치적 능력이 요구되지만, 그에 대한 자질 부족도 대선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출이 되었지만, 결국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니, 윤석열 본인도 억울하다. 자신이 뭘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뽑힌 것도 아니다. 당신들이 날 밀어올려서 이렇게 대통령을 만들어 놓고, 이제 두 달도 안된 상황에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니 말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 동안 수고한 사람들에게 장관자리도 좀 나눠주고, 친구들에게 선심도 쓰고, 일가친척들에게 이런 저런 자리를 좀 마련해 준 것 갖고 이렇게들 난리를 치니, 아마도 윤석열 본인도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앞으로도 기대가 없다. 사법시험을 여덟번 떨어지고, 아홉 번 째 합격하면서 이런 마음의 틀이 생겼을 것이다. 아, 뭐든지 끝까지 버티면 나는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틀이 지난 정부들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박근혜 정부 때, 한직을 전전하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버텼더니, 문재인 정부에 들어 결국 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이 되었다. 사퇴압력을 받았던 검찰총창 자리도 끝까지 버티고 들이받았더니, 어찌 되었나.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지금도 이런 마음 가짐일게다. 끝까지 버틴다. 그러면 결국 된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 남은 4년 10개월이 더욱 걱정이다.

악기 배우기와 연구

악기를 다룰 수 있다면 살다보면 겪게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일은 노래를 수동적으로 듣는 것과 또 다른 힘이 있다.

국민학교 5학년에 담임 선생님이 유난히 음악을 좋아하셔서, 우리 반 학생들로 이뤄진 합주반을 만들어서, 교내 행사에서 반주도 하곤 했었다. 음악 시간에 피리를 배웠는데, 내가 곧잘 했었는지, 선생님이 나를 합주부에 넣어주셨다. 음악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고, 그냥 계명을 외워서 피리로 부는 식이였지만 색다른 경험이었고, 덕분에 아직까지도 외우는 계명들이 꽤 있다.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 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집에 있던 기타를 퉁퉁거리고 있었는데, 기타들도 노닥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가 안좋았는지, 평소에 자식들 문제에 별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가 꽤나 강한 어조로 기타 치지 말라고 하셨다. 막 재미를 부쳐가던 중이었는데, 그렇게 그만 둔 후로는 다시 제대로 된 악기를 배우거나 연습할 기회가 없었다.

30대에 들어서서 기타를 하나 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반주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바램에서다. 코드 몇 개 배우다가 말고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하다가, 쉬운 코드 네 개만으로 된 김광석 노래가 있다고 해서, 그거 하나만이라도 배우자고 다시 시작한 것이 몇 해 전이다.

생각날 때마다 10분씩만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고, 덕분에 지금은 두 세 개 곡은 코드 잡는 손을 매번 보면서 확인하지 않아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반주가 되는 화음이 나면서, 연습하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일종의 긍정적 되먹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아가면서 교수로서 연구자로서의 경력이 쌓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게되었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던 회사를 떠나면서는 뭔가를 공부하는 일에 큰 열정이나 확신이 없었다. 다만 학위를 받게되면 다른 경력의 경로가 더 열리지 않을까 하는 어찌보면 막연한 생각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내 나름의 연구방향과 주제가 생기고, 그걸 더 깊이 생각하고, 그게 실제로 구현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런 경험이, 기타를 연습할 때 어느 날 부터인가 내 기타 연주에서 들려오는 화음이 꽤 그럴 듯 해지면서, 노래하는 일이 즐거워진 것 처럼, 연구하고 제안서 쓰는 일이 지겨운 반복 작업이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필요한 일들이며, 그 일들로 인해서 다시 내가 관심있고, 해결하고 싶은 일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되는 일종의 긍정의 되먹임 과정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여기 미시간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여름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이 모든 환경과 기회에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끌어올려본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자.

종부세

새 정부의 종부세 정책은 크게 두 가지.

  1. 종부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낮춰 종부세 부담을 완화.
  2. 종부세를 장기적으로 폐지하고 지방세와 통합해서 과세.

종부세의 상당부분은 지방교부세를 통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지원된다.

전국에서 걷힌 종부세의 61.57% (2조 4천억)가 서울에서 징수되어 재정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으로 지원되는데, 종부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면, 서울에서 걷힌 2조 4천억 대부분이 서울로 가게되고, 전남, 경북, 강원 3천억에서 2천억 가량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고 한다.

종부세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들 고가의 부동산 보유자들에게는 당장 이익이 되는 좋은 정책이지만, 수도권 집값을 폭등하게 만든 실패한 부동산 정책 때문에 국힘 후보에게 표를 준 지방분들은 이런 저런 손해가 만만치 않게 될 것 같은데, 제대로 알고는 투표하셨길…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22040683163

50대 중반

날짜를 적다보면, 2022년이라는 것이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2022년이라면 3차 대전 후에 지구가 멸망했거나, 또는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해서 은하계를 이동할 수 있는 우주선이 날아다녀야 할 것 같다.

나이를 세어보니 50대도 이제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자식들이 20대 초중반이 되었으니 이상할 일도 아닌데 2022년이란 년도만큼이나 50대라는 나이도 낯이 설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아져 더 늦기 전에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 30대 초중반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도 어리고, 삶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용기도 없었고, 삶의 무게를 짊어질 자신도 없었다. 50대 중반을 지나면서 지난 사진들을 살펴보니, 불과 5년 전의 나만 해도 참 젊었다.

지금의 주름지고 초라해보이는 모습도 다시 5년 뒤에 돌아보면 젊어보이겠지. 어제는 조금 더 젊었던 내가 되는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삶의 격랑을 많이 헤쳐 나왔다 생각했다. 이젠 좀 잔잔한 바다를 기대한다. 이런 저런 일들이 앞으로도 생길게다. 내게나 우리 자식들에게나,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어머니, 형제들, 누나. 그들의 가족들까지.

흔들리더라도 튼튼한 뿌리덕분에 뽑혀나가지 않도록, 하루 하루 더 열심히 살자.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실없는 농담도 잘 하고, 꽤 밝고 즐거운 아이였던 것 같은데, 삶에 찌들면서 자존감도 낮아지고, 내 자신의 분위기도 가라앉고 어두운 면이 더 넓어진 느낌이다. 본성을 찾아서 다시 밝고 즐겁게 살아보도록 하자.

기적

인정하자. 민주당 후보가 이기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태양계 행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순간 같은 것이다.

IMF 구제 금융을 가져온 경제 파탄, 후보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경선불복 후 독자 출마한 여당 후보, 자유민주연합이라는 김종필 세력과 연대, 이 모든 환경에서 김대중 후보를 내세우고 1.6% 차이로 신승을 했다.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인터넷 활성화, 노사모의 열성적 지지까지 등에 업고 치른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2.3% 차이로 경우 승리.

탄핵의 바람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손쉬운 승리를 이룬 것 같은 문재인 후보는 2위와 3위의 표 합산 (45.4%)에 뒤진 41.1%의 득표로 당선이 되었다.

이번 제 20대 선거에서는 그야말로 일대일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쳤지만 0.73% 차이로 졌다. 자격 미달의 상대 후보가 나와도 일대일로 붙어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기적이란 아주 가끔 일어나니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진인사 하고 대천명 했으나 0.73% 만큼의 기운이 덜 모였을 뿐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릴 필요는 없는거다. 그러니, 탓할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아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통을 떠뜨리지는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면 고마운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