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가 Netflix에 올라왔길래, 예고편을 봤는데, 공효진에 강하늘. 게다가 촌놈 강하늘이라니. 뭐야 명품구두 신겨서 밭 일시키는 기분이랄까. 미혼모에 잘 생긴 촌놈 총각이라니…

이게 말이 돼?, 이거 뭐야 하고 안 보고 있었는데, 배경이 되는 동네 옥산이란 곳이 뭔가 익숙하다. 그래서 살펴봤더니, 작년에 다녀온 “구룡포 근대문화역사 거리”다. 배경이 반가와서 별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근래 내가 봤던 드라마 중에 최고다.

여성주의가 살짝 뿌려진 로맨틱 코미디에 스릴러가 가당키나 하나? 잘 생긴 촌놈 총각에다가가 8살 사내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 이야기가 궁상맞지 않기가 가능이나 할까? 작가가 천재인 듯.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것들이 잘 버무려진 정말 잘 만든 드라마다. 게다가 덤으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쳐주기까지 한다. 제대로 사랑하는 법.

나는 왜 떠나나

지난 10년 간의 케터링(Kettering) 대학에서의 생활을 정리한다. 내년 1월부터 University of Michigan–Dearborn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고민이 없지 않았지만, 크게 망설이지는 않았다.

고민의 이유는 몇 가지였다.

하나는 큰 아들이 아직 케터링을 다니고 있다. 교직원 혜택으로 학비의 98%를 지원받기 때문에 그동안은 2%의 등록금만 내면 되었지만, 내가 떠나고 나면 남은 세 학기 동안은 약간의 장학금을 제외하고 나머지 등록금을 모두 내야한다.

다른 하나는 직급 문제. 현재 나는 부교수(Associate Professor)로서 정년보장(tenured)을 받은 상태이지만, 지금 옮기는 학교에서는 조교수(Assistant Professor)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년보장의 조기신청을 약속받기는 했지만, 교수들의 가장 큰 부담인 정년보장을 받기 위한 노력을 다시 해야한다는 문제였다.

학비 문제는 새로 옮기는 학교에서 2년간 여름학기 두 달치 월급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어떻게 해보기로 했지만, 정년보장의 달콤함은 떨쳐버리기가 쉬운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정교수(Full Professor) 신청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고, 또 다시 조교수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정년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과, 새로 시작하게 되면 약간의 startup 자금을 받게되니, 그것으로 연구실을 다시 잘 만들어가면 될 것이라 스스로를 토닥였다.

학교를 옮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연구환경이다. 케터링처럼 학생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학교는 신입생 수가 어느 수준이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몇 년간은 경제상황이 좋은 상태에서도 신입생 수가 감소하고 있고, 상황이 앞으로도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여러가지 긴축정책을 펼치게 되고, 그런 작업들이 요 근래 몇 년간 진행되고 있다. Professor of Practic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정년보장이 되지 않는 교수직을 만들었고, 퇴직한 교수들의 자리를 강사 또는 비정년교수로 채우고 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교수당 수업시간을 늘이려고 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체적으로 수업 부담을 늘여감으로써 연구할 수는 여건이 점점 안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벌써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지만,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직 연구자로서의 욕심이 내 안에 남아있고,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디가서 하기가 내 스스로가 부끄럽고, 남들처럼 제대로 된 연구를 해서, 인용지수가 높은 논문을 쓰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들이 나를 움직이는지 찬찬히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의 경험을 다시 돌아보고, 연구자로서 연구실 관리자로서 내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고민해보고, 새 연구실도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새 연구실의 이름은 비미(BIMI-Bio Inspired Machine Intelligence) 연구실이다. 우리말로는 생체기계지능 연구실이라고 할 작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뇌활동의 모델링을 기반으로 기계지능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앨리자베스 길버트의 책, Eat, Pray, Love의 번역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읽고, 두서 없이 마음에 남은 구절을 적다.

매일 무슨 생각을 할 지 고르는 법을 배워야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개인이 노력한 결과이다. 싸우고 노력하고, 때로는 세상을 떠돌기도 하면서 얻어야 하는 것. 행복한 상태에 도달했으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Dog Whisperer

Dog Whisperer란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요즘 한국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던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던가? 아무튼, 이 Dog Whisperer란 사람은 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개들을 행동을 고쳐준다.

개는 과거 무리 생활을 하던 늑대가 조상이고, 그 무리에서 서열을 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주인집에 있는 다른 동물들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자기보다 아래인지 위인지를 재빨리 파악하고,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는 복종,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은 개무시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었던 민주정부에서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물어뜯고,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권력의 충견이 되어 국민을 물어뜯던 모습에서 이 Dog Whisperer를 떠올리게 된다.

검찰은 법무부 소속의 외청이고, 법무부는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법무행정을 위임한 곳이다. 검찰총장(청장이라 불러야 한다고 하던데)의 임명은 대통령이 하고,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기위해 임기제를 실시한다.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를 국민에게 약속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고, 그 권한을 이용해서 행정부를 책임진다.

검찰은 행정부의 일부다. 수사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정부의 국정철학 바깥에 있을 수는 없다. 검찰 개혁을 위해 대통령이 행사한 인사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련의 정치적 행위는 주인을 자신보다 아래 서열로 본 개가 주인을 무는 것과 다르지 않다.

Dog Whisperer에서 버릇없는 개를 고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개에게 누가 주인인지 확실히 각인시키는 일이다. 개가 주인이 자기보다 서열이 위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주인을 물어뜯는 일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Dog Whisperer인 Cesar Millan은 낯선 개를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가 너보다 위라는 걸 각인시키고, 그렇게 하고 나면 아무리 사나운 개도 그 앞에서는 순한 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문제인 대통령이 검찰에 검찰개혁 방안과 수사과정에서 인권보호 방안 등을 “지시”하신 것은 적절한 통치행위이다.

선출받지 않은 권력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을 향해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검찰의 상관은 국민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행위로 특히 때에 따라서는 주인을 물어뜯는 광견이 되거나, 또 때에 따라서는 권력의 충견이 되어 국민을 물어뜯는 검찰에게는 무엇보다 적절한 일이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Ann Arbor에 있는 지인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책 선정은 한 사람 씩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고, 주제나 형식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냥 자기가 읽고 싶거나, 읽었는데 함께 공유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걸 선택해서 함께 읽기로 했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미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어도 좋겠다 생각하던 차에, 독서 모임에서 이 달에 함께 읽기로 결정이 되었다.

독서평이란 거창한 이름보다는, 다시 책을 읽으면서 공책에 정리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두서 없이 적어놓을 생각이다.

유시민은 오랜동안 다른 책을 발췌, 요약, 해석, 가공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데, 혹자는 그를 폄훼할 목적으로 자기 글은 없고, 남의 글을 가져다 여기 저기 갖다 붙이는 재주 밖에 없다한다. 유시민은 그런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으로 이름으로 명명하고, 그 정체성을 오히려 더 강화했다 할 수 있겠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늘 다른 사람의 글을 발췌, 요약, 해석, 가공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데다가 또한 10여년을 정치인으로 살아내면서 자기 이야기를 온전히 하기란 쉽지 않았을터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다음과 같다. 목차를 보면 핵심 주제와 더불어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나와있다. 답만 알고 싶다면 목차만 살펴봐도 된다.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품격있는 인생,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 품격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이다.

자기 삶은 자기 방식대로 살아야한다. 이유는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평범한 삶을 꿈꾸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고, “닥치는 대로” 살았다. 다만, 눈 앞에 닥쳐온 일들을 성실하게 처리하면서 살았다.

인생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재능이란 즐기면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방법은 없다.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스스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자기 삶의 의미를 모르면 삶은 비천하고 비루해진다.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그리고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유시민 –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죽음 – 세상은 그대로, 나만 無로 사라진다. 처절한 상실이 죽음의 공포의 근원이다.

나는 무엇이고, 누구인가? 내 삶에 주는 기쁨과 의미를 알아야 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죽음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강력한 삶의 의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

삶의 존엄성의 필수 조건은 “자유의지”이다. 칸트에 따르면 존엄한 것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하고,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밀고나가는 정신의 태도와 능력을 “자유의지”라고 정의한다.

나는 무엇으로 인생을 채우고 있나? 삶의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살아있는 순간마다 기쁨을 느끼는가?

유시민 –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품위있게 늙는 법에 대한 그의 이야기. 가슴에 새길만한 방법이다.

겸손. 화내지 않기. 없는 티 내지 않기, 배려. 의연, 경청

유시민 – 품위있게 늙는 법

선택적 정의와 공정

조국 법무장관 내정자에 대한 검증 문제로 온 나라가 뒤집어진 듯한 지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처음 의혹이 제기되었던 동생 부부의 문제나 사모 펀드에 대한 문제는 어느 새 뒷전이 되고, 사람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주제인 조국 딸의 입시 문제에 집중 포화가 가해지는 모양새다.

아무래도 우리는 자세한 “사실”들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에 더 끌리기 마련이라, 조국이란 사람이 자신의 말과는 다르게, 자식을 포함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이익을 살뜰히 챙겨왔다는 표리부동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큰 줄거리로 잡아 놓고, 확인되지 않은 기사들을 쏟아 부음으러써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엄청난 양의 기사가 퍼부어졌고, 대부분은 몇 가지 건조한 사실들을 던져놓고, “만약” 그것들이 “부정한” 방식으로 연결되었다면, “문제”다는 식의 아니면 말고 식의 기본적인 취재도 거치지 않은 기사다.

“발로 뛰어” 기사를 쓰라고 했더니, 기사를 “발로 썼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공감하는 바다.

기본 취재 없이도 사실 관계가 틀린 기사에 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몇 시간 뒤면 다시 다른 기사에 묻혀 사라지는 바람에 해당 기사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할까 했던 기회마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조국 후보의 딸”의 입시에 대한 의혹 보도에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는 기사의 수동적 소비자로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던 며칠이 흘렀다.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 의식은 내려놓고, 사실 확인 없이 무분별하게 의혹을 던지는 모습에서는 정파적 이득을 위해 한 개인과 그 가족의 파멸을 보고야 말겠다는 섬뜩한 의지가 보이는 듯 하다. 물론 의혹이 충분히 해명되지 않고 있는 사항들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초반에 한 인간과 그 가족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던 수 많은 의혹들이 또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근거없었던 의혹들을 근거로 이미 마음 속으로 확증된 조국 후보에 대한 가치 판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근거없는 의혹들의 상당부분이 해소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의혹들의 세세한 내용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조국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그대로 남게 된다.

조국 딸의 대학입시와 대학원 입시와 관련된 대학들에서 이른바 조국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학교 측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거나 열릴 계획이라고 한다.

촛불 집회에 나온 대학생들의 주장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꼰대가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정의와 공정은 자기들만이 쌓아 올린 성안에서 자기들의 독점적 이익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했을 때만 들게되는 선택적 정의와 공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들이 외주화한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하나 둘 씩 목숨을 잃어갈 때도 침묵했던 그들이, 자기들 학교의 입시와 장학금 지급의 공정성이 의심될 때 비로소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아무리 양보해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공정과 정의를 입에 올리려면, 자신은 재단사이면서 여공들의 열악한 삶에 공감하고, 그 허울 뿐인 근로기준법이라도 준수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몸까지 불살라야 했던 전태일을 생각하고, 계엄군이 들이달칠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 자신들의 목숨보다 항쟁의 대의와 먼저 간 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죽음으로 받아들였던 80년 광주의 전남도청을 기억했으면 한다.

자신에게 근로기준법에 대해 설명해 줄 대학생 친구 하나를 간절히 바랬던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그 뒤 수많은 대학생들을 노동운동으로 이끌었고,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다른 수준으로 끌여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광주에서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인 80년대 내내 지식인 사회를 짓눌렀고, 그것이 87년 민주항쟁의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최저임금 관련 논란

지난 대선 때 모든 유력 후보들이 약속했던 최저임금 1만원까지 인상 공약. 문재인 정부에서 이 약속을 지키려다가 보수매체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아왔고, 그 공격이 꽤 성공적이었다. 지난 2년간 큰 폭으로 올리던 최저임금이 결국 올 해는 2.87%의 시급 인상에 그쳤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901561.html

최저임금을 올리면, 임금부담 때문에 고용이 줄고, 자영업자들은 줄도산을 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보수경제지들의 전폭적인 지지덕분에 힘을 얻은 형세다. 경제가 어려운 이유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이라는 논리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또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새다.

최저임금 문제가 이런 식으로 그렇게 단순한 도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가장 간단한 반례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내려면, 임금부담이 줄어드니 고용이 늘고, 자영업자들은 임금걱정없어 만세를 부를 것이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자명해보이는데,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만은 아닐 것인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공격하려고 과도하게 부풀려진 면이 있다고 본다.

지난 2년간의 두 자리 수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94933.html

요약하자면, 임금격차는 줄었지만, 노동시간과 고용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1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소규모 자영업체과 중소 제조업체 94곳을 심층면접하는 방식으로 조사했다고 한다. 조사 기간이 최저임금의 두 번째 두 자리 수 인상 기간과 겹치는 문제가 있고, 그렇다면, 지난 2년 간의 두 자리 수 최저 임금 인상의 결과라고 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최저 임금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결과를 제대로 논의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이르다.

지난 10년 간의 최저임금과 고용률의 변화를 살펴본 기사도 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900831.html

하지만 고용률은 임금 이외에도 산업구조의 변화같은 다른 다양한 원인이 존재할텐데, 둘 사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상관관계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지적받을 만하다.

그런 면에서 다음의 기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https://www.vox.com/the-highlight/2019/7/13/20690266/seattle-minimum-wage-15-dollars

이 기사는 미국 시애틀에서 최저 시급을 2015년에 15달러로 올리고 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고찰한 것이다. 몇 가지 연구 결과를 소개했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후에 벌어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살펴봤다. 보수매체의 “선동”대로라면, 9달러 정도에서 15달러로 급격하게 올렸으니 시애틀의 경제는 파탄이 났어야 할텐데, 결론적으로 말해, 결과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나타났고, 경제가 파탄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시애틀에는 매 달 40개의 새로운 식당이 생기고 잏으며, 식당과 술집에서 고용하는 인원은 2015년 이후 134,000명에서 158,000으로 오히려 증가했고, 고용주들을 면접한 결과,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이후에 사업을 그만두거나 다른 주로 옮기겠다는 대답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노동시간이 아주 적었던 저소득층은 전체 임금은 거의 그대로이고, 상대적으로 긴 노동시간을 가졌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애틀에서의 이런 결과가 다른 주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날 것에는 조심스러운 편이다. 시애틀의 경제가 좋은 편이라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들고, 고임금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높은 최저 임금이 절대악은 분명히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시작

내게조차 버려진 이 블로그에 거의 열 달만에 다시 들어와 본다.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긴이후로 자판으로 글쓰기를 의도적으로 피한 면도 있고, 종이 일기에 감정의 쓰레기들을 던져 놓기 시작한 이후로는 굳이 이곳에다가 넉두리를 할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에는 새로 하기로 한 일들이 여러가지로 겹친데다가 수업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업이 두 개가 한꺼번에 잡히는 바람에 하루 하루를 전쟁처럼 보냈다.

이번 학기는 다행히 약간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겨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나를 돌아보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2009년에 7월에 지금 하는 일을 시작했으니, 올 해 7월이 되면 만 10년이 된다. 여태껏 했던 어떤 일보다도 오랜 기간 동안 한 일이 되었지만, 가장 짧게 느껴지는 지난 10년이다.

앞으로 얼마 동안 건강한 상태로 더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잠시 숨고르기를 해보고,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내 안의 욕망에 더 귀기울여 보기로 한다.

우울할 땐 뇌과학

걱정과 불안

걱정: 잠재적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

불안: 잠재적 문제에 대해 ‘느끼는’ 것.

불안이란 잠재적 위험일 뿐인데, 실제위험이라고 느껴서 뇌의 공포회로가 활성화한 결과이다.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 상태을 ‘인지’하면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서 편도체를 진정시킨다.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일은 뇌회로를 재배선하고 기분이 좋아지게 도움을 준다.

주의회로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 판단하는 곳이며 감정회로와 연결되어 있다. 감정회로는 부정적인 것에 더 쉽게 활성화한다. 뇌는 부정편향을 갖고 있어서 상황을 실제보다 더 나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판단하지 않는 알아차림’을 연습해야 한다.

실수를 하면 감정적인 편도체가 자동으로 가동되지만 자신의 감정 반응을 ‘인식’하면 전전두피질이 활성화하면서 편도체를 진정시킨다.

자신의 뇌가 불확실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확실성은 감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란 통증의 가능성에 대한 육체적 감정적 반응이다.

긴 포옹은 옥시토신을 방출하게 만들며 이는 편도체 반응성을 떨어뜨린다.

운동, 숙면, 마사지는ㄴ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방출을 돕는데, 이는 긍정적 사건에 대한 주의를 증가시킨다.

낙천성 회로 강화하기

  • 미래의 긍정적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상상한다.
  • 일어날 수 있다. 일어날 것이다 기대 한다.

biofeedback

우리가 행동으로 뇌의 반응을 바꿀 수 있다. 길고 깊게 호흡하기 –> 행복하다는 신호를 준다 –> 고개를 들고 미소 짓기

  • 미소 –> 행복하면 짓는다. 반대로 지으면 행복. 긍정적 감각이 커진다
  • 반듯한 자세 –> biofeedback의 주요 근원
  • 평온한 표정
  • 천천히 깊게 호흡: 6번 들이마시고, 2초간 쉬웠다가, 6번 내쉬고. 이를 반복.
  • 근육 이완

습관

고치기 어려우니 습관이다. ‘이런 습관이 있군’하고 알아 차리기. 오래된 습관은 제거되지 않고, 더 강력한 습관에 의해 약화된다.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습관이 강화된다. 충동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은 공급량에 한계가 있다. 충동에 저항하는 일은 제한된 수의 총알로 좀비군단과 싸우는 일이다. 해결책은 연습을 통해 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

습관은 선조체(corpus striatum)가 통제. 반복 행동은 배측 선조체, 충동은 측좌핵 (도파민을 분비) 에서 관장.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

계획은 수정하고 다시 만드는데 그 유용함이 있다.

일단 시도하고 바꾸고 다시 시도한다.

기억이란 아무리 강한 기억이라도 2년 후에는 대상자의 10%만이 정확히 기억.

욕망. 타인의 욕망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나만의 지도를 가지려면 유아의 마음으로 세상을 탐구해야 한다.

내 욕망은 어떻게 찾나? 자신만의 가치 평가 능력을 키워야. 가치 평가 능력이란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을 한 경험을 토대로 내 앞에 놓은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