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시도의 후과

불법 비상 계엄으로 육군 특수전 사령부를 포함하여 정보사령부 특임대 등 우리나라 최강의 부대를 동원했다가, 그 사령관들을 포함하여 많은 수의 군장성, 영관급 장교들이 처벌될 위기에 처했다.

인조반정 즈음에 지금의 북만주 지역에는 후금이 등장해서 그 기세를 키워가던 중이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인조반정의 공신 중 하나였던 이괄은 그 북방의 경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반정공신들 간의 알력으로 이괄의 아들이 포함된 역모 의혹 사건이 발생하지만, 조사 후 무고로 밝혀진다. 하지만 이괄을 잡아와 아들의 모반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이괄을 서울로 압송하려 한다. 이괄은 아들이 모반죄라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1만여 병력을 이끌고 한양을 점령하는 등 초기에는 꽤 기세를 올렸지만, 곧 전열을 정비한 관군에게 대패하여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북방 수비의 주력군이 무너지고, 반란군 일부가 후금으로 도망하여, 후에 정묘호란 등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조선말기의 군사력이 형편없다보니, 조선의 군사력을 대단치 않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조선 초기나 중기의 조선군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군대가 아니었다. 후금으로서도 조선을 전면적으로 침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에 두차례 호란에서도 소수병력의 기습으로 한양으로 곧바로 진격하여 왕을 잡고 속전속결로 마무리하려 했다.

만일 이괄의 난이 일어나지 않아서, 북방 수비를 위한 주력군이 유지되었다면, 후금의 입장에서도 쉽게 조선을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론유감1

첫 번째는 친/반/비 란 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2000년대 초반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정치권 사람들을 분류할 때 친/반/비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이른바 동교동계, 상도동계 등의 계파로 정치인들을 분류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친노, 비노 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로, 친이계, 친박계라는 말을 거쳐, 친박, 진박, 비박 이란 용어가 만들어져 쓰였다. 친문, 반문, 비문을 지나, 친윤, 반윤, 비윤에다가 친한이란 말도 들어오고, 친명, 비명, 반명까지 그 쓰임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조선시대에도 붕당이라 하여, 남인, 북인 (대북, 소북), 노론 (시파, 벽파), 소론 등이 있었다. 정파와 학파에 따라 나뉘고, 각 당파별로 큰 스승들이 있었다. 그래도 친이이, 반이이, 친이황, 반이황, 친조식, 반조식 등과 같이 정파를 나누지는 않았다.

언어는 생각의 틀을 만들기도 하지만, 생각을 그 틀 안에 가두기도 한다. 전우용 교수의 일갈처럼 민주정(democracy)란 말이 민주주의로 잘못 번역되면서, 왕정이나 공화정 처럼 하나의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민주정이란 말이 무슨 무슨 주의처럼 어떤 신념 체계를 뜻하는 말처럼 인식이 되면서, 믿고 안믿는 신앙의 차원이 되어버렸다. 경제체제를 일컫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상대편에는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적절한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 대신 ‘민주주의’란 말을 상대어로 더 흔히 쓰기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잘못된 생각의 틀 때문이다.

한 사람의 여러 층위 철학과 인식을 특정인과의 친소로 나누는 이런 저열한 방식은 그렇게 분류된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다. 나의 존재가 어떻게 특정인과 친하거나 또는 소원하거나로 정의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하나 하나가 헌법 기관인 현직 국회의원을 친/반/비로 딱지 붙이는 순간, 그 각자의 존엄함은 사라지고 ‘친’이 지향하는 한 개인의 명령에 무작정 따르는 수동적인 객체로 만들게 된다. 어쩌면 지금 친윤, 비윤, 친한, 친명, 비명 으로 분류되는 개개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친윤의 입장, 친한의 입장, 친명의 입장, 반명의 입장 만이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바라건데, 사람들을 친/반/비 로 구분짓는 일은 그만 멈추어주었으면 한다. 그 사람들이 무슨 모임이라도 만들어 활동한다면 모를까, 언론이 자의적으로 찬/반/비 로 붙여 부르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본인의 의사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오늘, 내일의 발언의 내용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찬/반/비 분류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언론의 말장난일 뿐이다.

파시스트는 페어플레이의 상대가 아니다

다시 리영희.

친위쿠데타가 벌어졌던 한국이나,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이나, 세상은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혼란스럽다. 신경을 빠짝 세운 채로 한 두달이 넘어가니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이러다가는 내란 수괴와 그 동조자들보다 내가 먼저 나가 떨어질 것 같다.

20여년 전에 읽었던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쓴 <E=mc2>이란 책을 다시 읽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질량은 곧 에너지라는 이 통찰에까지 오게된 이야기를 읽다보면 세상 일에 찌든 내 머리도 좀 쉬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였는데,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이런 통찰에 도달할 수 있게되기 까지 기여한 과학자들의 드라마같은 삶. 그리고, 질량은 그것의 광속의 제곱만큼의 배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한 원자 폭탄. 나치독일과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 얽인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어쩌면 머리를 식히는 책으로 적당한 책은 아니었다.

내 방 책꽂이 앞에 서서 무얼 다시 읽을까하다가 <리영희>교수의 <자유인>을 꺼내들었다. 1990년에 출간되었으니 이제는 35년 전이다. 1987년 6.10 항쟁을 통해 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이를 통해 군부독재를 몰아내기는 커녕 전두환의 친구로 12.12 군사반란의 주동자 중 하나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 리영희 교수는 그 절망 속에서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세상에 던져 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1988년 월간중앙 12월호에 실린 <파시스트는 페어플레이의 상대가 아니다>라는 글은 광복 43년이란 부분을 빼면 마치 어제 쓴 글처럼 시의적절하고 살아있다. 이 글에 인용된 중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노신의 1925년 작품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에는 세 가지 종류의 ‘물에 빠진 개’가 나온다. (1) 자기 실수로 빠진 개, (2) 남이 때려 빠뜨린 개, (3) 내가 때려 물 속에 처박은 개. 이 중에 자신이 맞붙어 싸워 물에 처넣은 개라면 물에 빠진 개를 몽둥이로 힘껏 때린다고 해서 너무하다고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사람을 문 개는 뭍에 있거나 물 속에 빠졌거나 모조리 몽둥이질을 해서 혼을 내야 한다”는 것.

“광복 직후 친일,반민족행위자 집단을 숙정하지 못한 까닭에 이 국민은 단독정권 수립, 민족분단, 영속적인 독재정권 체제 하에 신음해야 했다. <<중략>> 국민이 해야할 일은 민주혁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들은 잠시 물에 처넣어졌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어설픈 ‘관용론’과 ‘보복불가론’에 힘입어 국면이 바뀌기만 하면 그들은 물에서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덤빌 것이다.

파시스트들의 본성은 그런 것이다. 페어플레이는 좋다. 그러나 그것은 페어플레이의 정신을 이해하고 행동할 줄 아는 상대에 대해서만 적용될 미덕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적 정기를 확립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 민주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보수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친위쿠데타 실패로 인해, 현직 대통령이 탄핵 소추될 처지가 되자, 보수의 소멸,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보수가 소멸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새롭게 태어날 기회가 되었다 말하고 싶다.

흔히 보수정당의 뿌리로 이승만의 자유당을 생각하는데,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만든 민주공화당이 그 뿌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4.19혁명으로 역사적 심판을 받고 사라진 당을 자신들의 뿌리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긴 하다. 그 이후,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삼당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다가 현재의 국민의 힘까지 이르고 있다. 김영삼을 시작으로 소위 문민정부가 되면서 애초의 군사반란 세력의 당이라는 색채가 많이 옅어지긴 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뿌리라고 생각하는 정당은 4.19 혁명으로 새롭게 세워진 장면 내각의 민주당이다. 이 민주당은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철저한 반공주의 보수 우익 정당이었다. 자유당 탈당파를 포함한 여러 계파가 모여서 창당한 당이며, 이승만 정부 하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했던 조봉암을 ‘사상이 의심스럽다’면서 배제할만큼 보수 우익 정당이었다. 5.16쿠테타로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해산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건강한 보수정당을 자리에 위치하게되고, 국민의 힘과 같은 내란동조 세력은 소수 정당이 되는 날, 우리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진보 정당이 나타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처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세력이 국정의 한 축으로 존재하는 한, 진보와 보수의 건강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민주당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보수가 재탄생하는 일이니, 이번 탄핵이 완성되면 보수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놀랍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까지 떨어졌다고 호들갑이다. 호들갑을 떠는 게 나는 더 놀랍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기대는 있었다. 이전 이명박 정부같이 이른바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사사로운 이득을 챙기기 위해 국가권력과 시스템을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박근혜에게는 그 믿음이 옳든 그르든 간에 최소한 오늘의 한국이 자기 아버지가 일으킨 나라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고자 하는 욕심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자기 능력에 넘치는 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으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서원이라는 사인에게 넘겨서 국가를 운영하다가 탄핵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에게는 애초에 이런 기대조차 없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권 교체의 구호만 높았지, 교체한 정권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사람에게 단 몇 달 만에 세상을 다른 식으로 바라볼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평생을 돈벌이에 몰두해 살아온 이명박 정권에게 공적인 마음을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었던 것처럼 말이다. 국정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옳고, 다른 한 쪽은 일방적으로 그른 식이 아니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에 정원을 늘려주면, 지방대의 몰락이 가속화하는 것도 가까운 일례다. 방폐장을 건설은 시급한 일이고, 전 국민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방폐장이 건설될 지역에서는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 운영에는 고도의 정치적 능력이 요구되지만, 그에 대한 자질 부족도 대선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출이 되었지만, 결국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니, 윤석열 본인도 억울하다. 자신이 뭘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뽑힌 것도 아니다. 당신들이 날 밀어올려서 이렇게 대통령을 만들어 놓고, 이제 두 달도 안된 상황에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니 말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 동안 수고한 사람들에게 장관자리도 좀 나눠주고, 친구들에게 선심도 쓰고, 일가친척들에게 이런 저런 자리를 좀 마련해 준 것 갖고 이렇게들 난리를 치니, 아마도 윤석열 본인도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앞으로도 기대가 없다. 사법시험을 여덟번 떨어지고, 아홉 번 째 합격하면서 이런 마음의 틀이 생겼을 것이다. 아, 뭐든지 끝까지 버티면 나는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틀이 지난 정부들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박근혜 정부 때, 한직을 전전하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버텼더니, 문재인 정부에 들어 결국 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이 되었다. 사퇴압력을 받았던 검찰총창 자리도 끝까지 버티고 들이받았더니, 어찌 되었나.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지금도 이런 마음 가짐일게다. 끝까지 버틴다. 그러면 결국 된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 남은 4년 10개월이 더욱 걱정이다.

종부세

새 정부의 종부세 정책은 크게 두 가지.

  1. 종부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낮춰 종부세 부담을 완화.
  2. 종부세를 장기적으로 폐지하고 지방세와 통합해서 과세.

종부세의 상당부분은 지방교부세를 통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지원된다.

전국에서 걷힌 종부세의 61.57% (2조 4천억)가 서울에서 징수되어 재정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으로 지원되는데, 종부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면, 서울에서 걷힌 2조 4천억 대부분이 서울로 가게되고, 전남, 경북, 강원 3천억에서 2천억 가량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고 한다.

종부세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들 고가의 부동산 보유자들에게는 당장 이익이 되는 좋은 정책이지만, 수도권 집값을 폭등하게 만든 실패한 부동산 정책 때문에 국힘 후보에게 표를 준 지방분들은 이런 저런 손해가 만만치 않게 될 것 같은데, 제대로 알고는 투표하셨길…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22040683163

기적

인정하자. 민주당 후보가 이기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태양계 행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순간 같은 것이다.

IMF 구제 금융을 가져온 경제 파탄, 후보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경선불복 후 독자 출마한 여당 후보, 자유민주연합이라는 김종필 세력과 연대, 이 모든 환경에서 김대중 후보를 내세우고 1.6% 차이로 신승을 했다.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인터넷 활성화, 노사모의 열성적 지지까지 등에 업고 치른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2.3% 차이로 경우 승리.

탄핵의 바람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손쉬운 승리를 이룬 것 같은 문재인 후보는 2위와 3위의 표 합산 (45.4%)에 뒤진 41.1%의 득표로 당선이 되었다.

이번 제 20대 선거에서는 그야말로 일대일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쳤지만 0.73% 차이로 졌다. 자격 미달의 상대 후보가 나와도 일대일로 붙어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기적이란 아주 가끔 일어나니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진인사 하고 대천명 했으나 0.73% 만큼의 기운이 덜 모였을 뿐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릴 필요는 없는거다. 그러니, 탓할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아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통을 떠뜨리지는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면 고마운 일이지.

맞짱

대통령 선거에서 일 대 일로 맞장을 뜨면 언제나처럼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다.

돌이켜보면 직선제 개헌 쟁취 후, 삼당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 계열의 세력과 맞붙은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일 대 일로 붙어서 이긴 적은 없었다.

  1.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과 연대 + 이인제의 독자출마가 있었다.
  2. 노무현 대통령은 막판에 단일화를 파기하긴 했지만 정몽준 세력과 단일화가 있었고,
  3.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이란 사상 초유의 일이 있어서 홍준표를 크게 이겼지만, 홍준표 + 안철수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이라 진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라는 구호를 덮을만큼 큰 다른 의제 설정에 실패했고, 맞장을 떠도 어쩌면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해서라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는 윤석열이란 허술한 후보가 나와서, 민주당에서 어쩌면 맞장 떠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게 가장 큰 실책이다. 윤석열을 빼고 다른 모든 세력과 광범위한 연대를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고. 맛이 가버린 정의당의 위치도 민주당으로서는 뼈 아프다. 정의당이 더 이상 연대해야 할 세력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구도라면 다음에도 일 대 일 맞장이 불가피한데, 새로운 정부가 어떤 종류의 실정을 하더라도 다음 대선에서는 또 다시 힘겨운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윤석열이 아니라 홍준표가 올라왔다면 더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거다. 후보가 윤석열이라 그나마 이렇게 깻잎 한 장 차이로 석패를 한 거다.

맞장떠서 이기기에는 아직도 기득권 카르텔이 견고하다. 이른바 강남 3구의 윤석열 지지율을 보라. 대구/경북 못지 않다.

이만큼 해낸 이재명 후보 수고 많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크게 쓰일 그 순간까지 버티기!!!

20대 대선 결과

새벽 잠이 깨어, 투표율과 개표결과를 초단위로 지켜봤지만,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황망하고 속상하다.

한동안 잔잔한 강물을 만나 경치 구경도 하고, 산들 바람도 맞으며 지냈는데,
눈 앞에 우르릉 쾅쾅 굽이치는 성난 물길이 보이는 것 같다.

굽이치는 구간을 배를 꼭 잡고 뒤집어 지지 않도록 버티면 또 다시 너른 강물을 만나게 될게다.
강은 아무리 굽이쳐도 어차피 바다로 간다.

  • 노태우가 전두환에 이어 선거를 통해 집권을 했지만, 결국 군부를 우리 정치에서 영원히 물러나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
  • 박근혜가 당선이 되었지만, 그를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깊었던 박정희 시대의 막을 내렸다.
  • 이제 검찰권력이 임면권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길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검찰권력의 폐해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어서 마지막 남은 무소불위의 검찰권에 대한 개혁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 감히 예상한다.

다만, 너른 강물 만날 때까지 많이 상하지 않게 되기만 바랄 뿐이다.

어떤 정권으로 교체하느냐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고들 해서, 어떤 정권으로 교체하기를 원하는지 생각해봤다.

윤석열의 지지도가 높게 나오니 “국민의 힘”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기를 바란다는 얘기겠다.
그 세력이 정권을 잡았던 박근혜, 이명박 정권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굵직 굵직한 사건만 나열해 보겠다.

  • 세월호 사건
    총 사망자 299명 실종자 5명. 희생자 대부분이 단원고등학교 학생들로 아이들이 수장되는 현장을 전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본 충격적인 사건.
  • 민간인 국정개입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 국정에 깊숙히 개입해서 정재계, 교육, 의료, 예체능, 안보/군사 분야 등에 영향력을 미쳐 박근혜가 탄핵에 이르게 된 사건
  • 메르스 사태
    중동 호흡기증후군이라도 알려진 메르스로 인해 감염, 사망한 사람의 수는 중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 두 명 감염자에 그쳤으니, 대한민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86명의 감염자와 36명의 사망자를 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봉준호, 박찬욱, 송강호 등 문화 예술인 총 9,473명 (세월호 선언 관련: 1,348명, 문재인 후보 지지: 6,517명, 박원순 후보 지지: 1,68명)의 목록을 만들어, 국정원까지 개입하여 감시, 탄압, 보복, 매장 시켰다.
  •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 사령부 여론조작 사건
    국가의 정보기관과 군이 직접 인터넷 여론 조작을 위해 조직적 활동을 하다가 발각된 사건.
  • 용산참사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재개발 보상관련 농성 진압과정에서 경찰 포함 6명 사망, 30여명 부상
  • 백남기 농민 사망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 가격으로 쓰러지고, 1년 간의 의식불명 상태 후 사망한 사건으로,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아닌 ‘병사’로 기재된 사망원인에 관한 논란.
  • 방송장악과 언론통제
    KBS 정연주 사장 불법 해임, YTN 방송 장악을 통한 언론통제.
  • 노무현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한 정치적 타살. 노무현 추모 시민분향소 철거, 영결식 방해.
  • 김대중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노벨평화상 취소를 위해 공작.
  • 데이비슨 프로젝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비자금을 찾겠다고 국정원의 대북공작금을 유용하여 공작을 펼침. 2년 넘게 지속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함. 최근에 당시 국정원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 미네르바 사건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리먼 브라더스 부실, 환율폭등, 금융위기 등에 관한 글을 다음 아고라 등에 쓰던 박대성이란 사람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 구소했던 사건. 위헌 심판 소송을 통해 최종 무죄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자유로운 분위기로 활성화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게 만든 사건.
  • 4대강 사업 반대파 사찰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 명박산성
  • 천안함 침몰 사건
  • 연평도 포격 사건
  • 소망교회 관련 종교편향

그 동안은 권력의 개 역할에 만족하고 충실하던 검찰이 이번에는 직접 정치권력에 도전하고 나섰다.
주인을 무는 개를 정권교체의 도구로 쓰겠다는 “국민의 힘”도 안쓰럽지만,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분들, 어떤 정권으로 교체되는 것인지는 정말 알고서 원하는 것인지, 진짜 궁금하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쓸모가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