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친/반/비 란 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2000년대 초반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정치권 사람들을 분류할 때 친/반/비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이른바 동교동계, 상도동계 등의 계파로 정치인들을 분류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친노, 비노 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로, 친이계, 친박계라는 말을 거쳐, 친박, 진박, 비박 이란 용어가 만들어져 쓰였다. 친문, 반문, 비문을 지나, 친윤, 반윤, 비윤에다가 친한이란 말도 들어오고, 친명, 비명, 반명까지 그 쓰임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조선시대에도 붕당이라 하여, 남인, 북인 (대북, 소북), 노론 (시파, 벽파), 소론 등이 있었다. 정파와 학파에 따라 나뉘고, 각 당파별로 큰 스승들이 있었다. 그래도 친이이, 반이이, 친이황, 반이황, 친조식, 반조식 등과 같이 정파를 나누지는 않았다.
언어는 생각의 틀을 만들기도 하지만, 생각을 그 틀 안에 가두기도 한다. 전우용 교수의 일갈처럼 민주정(democracy)란 말이 민주주의로 잘못 번역되면서, 왕정이나 공화정 처럼 하나의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민주정이란 말이 무슨 무슨 주의처럼 어떤 신념 체계를 뜻하는 말처럼 인식이 되면서, 믿고 안믿는 신앙의 차원이 되어버렸다. 경제체제를 일컫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상대편에는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적절한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 대신 ‘민주주의’란 말을 상대어로 더 흔히 쓰기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잘못된 생각의 틀 때문이다.
한 사람의 여러 층위 철학과 인식을 특정인과의 친소로 나누는 이런 저열한 방식은 그렇게 분류된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다. 나의 존재가 어떻게 특정인과 친하거나 또는 소원하거나로 정의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하나 하나가 헌법 기관인 현직 국회의원을 친/반/비로 딱지 붙이는 순간, 그 각자의 존엄함은 사라지고 ‘친’이 지향하는 한 개인의 명령에 무작정 따르는 수동적인 객체로 만들게 된다. 어쩌면 지금 친윤, 비윤, 친한, 친명, 비명 으로 분류되는 개개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친윤의 입장, 친한의 입장, 친명의 입장, 반명의 입장 만이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바라건데, 사람들을 친/반/비 로 구분짓는 일은 그만 멈추어주었으면 한다. 그 사람들이 무슨 모임이라도 만들어 활동한다면 모를까, 언론이 자의적으로 찬/반/비 로 붙여 부르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본인의 의사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오늘, 내일의 발언의 내용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찬/반/비 분류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언론의 말장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