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와 필기하기

책을 읽으면서 공책에 필기하듯이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다. 아마도 5년전 부터 정도일까. 딱히 깔끔하게 정리한다기보다는 그냥 그날 그날 읽은 내용 중에서 중요해 보이는 것을 책에 밑줄을 치거나 하는 대신에 공책에 따로 적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적은 공책을 몇 개월 후에 펼쳐보았을때다. 주의깊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마치 다른 사람이 정리해 놓은 것을 내가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해 보이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

그래서, 아, 이게 책 읽기의 한 가지 방법론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책을 읽으면서 항상 독서노트를 함께 갖고 다니면서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예전 독서노트를 특별한 목적없이 펼쳐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정리할 욕심이 나면 여기에 적기 놓기로 결심하다.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교수가 쓴 “과학, 철학을 만나다”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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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주문하면서 호기심에 함께 주문한 책이다. 보통 이런 식으로 주문한 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대 이상이다. 재미도 있을 뿐 아니라, 공학자로서, 넓은 의미의 과학자로서 연구 방법론에 대해 다시 한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과학 자체와 과학 방법론에 대한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대립적 입장의 소개이지만, 저자의 다원주의적 과학에 대한 이야기와 그와 더불와 온도계와 전지에 대한 이야기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과학사와 과학방법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강추.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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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최근에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이 책은 두 번째 모임에서 선택된 책이다. 책 선정은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한다. 그래서 자기가 평소에 읽지 않게 되는 책도 읽게 되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파드캐스트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묶었다.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지만, 제시된 대안은 그다지 구체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제기된 문제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나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더 앞선 세대와 나보다 20년 정도 어린 세대의 이야기다. 그 사이에 우리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핀다.

오늘날 빈부격차가 극심한 헬조선을 낳은 것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겠지만 사실 조금만 돌아보면 시민들의 총의가 모아진 면이 없지 않다. IMF 구제 금융의 격랑 속에 휩쓸려 간 면도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 시민의 선택이다.

우리나라 봉급 생활자의 중위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을 살짝 넘는 통계는 개인적으로 충격적이다.

Guns, Germs, and Steel (총균쇠)

Guns, Germs, and Steel. 오늘 드디어 다 읽었다. 처음 시작한 날을 보니 작년인 2015년 9월이다. 몇 달에 걸쳐서 겨우 읽어냈다. 어떤 날은 한 쪽도 다 읽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많아야 몇 쪽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꾸준히 읽으니 결국은 다 읽게 된다.

두꺼운 책이라 시작할 엄두가 안났지만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읽자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처음에는 생소한 식물이나 곡식 이름들 때문에 좀 난감했지만, 차츰 익숙해졌고, 처음 몇 개의 장을 넘어가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나니 한결 읽기가 편해졌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생리학자(physiologist)이다. 그래서인지 자기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꽤나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흔히 역사서에서 보는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건데 이러 이러했을 것이다 하는 식이 아니고, 마치 과학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듯 정교하게 자신의 논리를 설득력있게 전개해 나간다는 점 또한 흥미로왔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책의 주제를 아주 단순화해본다면, 문명의 발달은 어떤 인종의 우열 때문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때문이며 그 주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재배가능한 식물들의 존재여부와 고기와 노동력으로 쓸 수 있는 가축화 가능한 포유류의 존재여부다. 여기에 한 곳에서 개발 또는 발견된 기술이나 지식이 쉽게 퍼져나갈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다. 유라시아 대륙이 아메리카대륙,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비해 이런 지리적 여건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시민의 교양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으로 유명한 채사장이 후속편을 냈다. 시민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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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학원 교사를 했는지, 각 장을 마치기 전에 항상 꼼꼼하게 정리하고 넘어간다. 제목 그대로 민주사회의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교양을 다뤘다. 복잡한 세상 일과 담 쌓고 사는 사람들에게 지긋 지긋한 현실의 Matrix로 들어가는 열쇠와 같은 책.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는 대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감수할 사람들을 위한 세상 입문서.

시민의 교양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이란 책을 쓴 채사장이란 필명을 가진 분이 쓴 책, “시민의 교양”을 다 읽다.

제목이 참 건조하다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더 좋은 이름이 있을까 싶다. “인민”이란 말이 금기어가 된 마당에 “시민”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기 어렵다는 말에 동의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단순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충분한, 틀을 제공함으로써 시민이라면 가져야할 기본 소양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고등학생 이상의 학생들에게 필히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교수대의 비망록

문정우의 “나는 읽는다”를 통해 소개받은 책이다. 체코의 작가이자 공산주의 활동가인 율리우스 푸치크가 나치하에서 독일비밀경찰에게 체포된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처형되기 직전까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연필로 담배 종이 위에 쓴 글이다. 이렇게 쓰인 글들은 연필을 구해주었던 그 간수의 도움으로 독일 패망까지 안전하게 보관되었다가, 푸치크의 부인에게 전달되어 그녀가 책으로 엮은 것이다.

혹독한 고문과 예정된 죽음 앞에서도 사회주의적 낙관을 버리지 않았던 푸치크의 글은 그의 임박한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에게 주는 울림이 유독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