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배우기와 연구

악기를 다룰 수 있다면 살다보면 겪게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일은 노래를 수동적으로 듣는 것과 또 다른 힘이 있다.

국민학교 5학년에 담임 선생님이 유난히 음악을 좋아하셔서, 우리 반 학생들로 이뤄진 합주반을 만들어서, 교내 행사에서 반주도 하곤 했었다. 음악 시간에 피리를 배웠는데, 내가 곧잘 했었는지, 선생님이 나를 합주부에 넣어주셨다. 음악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고, 그냥 계명을 외워서 피리로 부는 식이였지만 색다른 경험이었고, 덕분에 아직까지도 외우는 계명들이 꽤 있다.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 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집에 있던 기타를 퉁퉁거리고 있었는데, 기타들도 노닥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가 안좋았는지, 평소에 자식들 문제에 별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가 꽤나 강한 어조로 기타 치지 말라고 하셨다. 막 재미를 부쳐가던 중이었는데, 그렇게 그만 둔 후로는 다시 제대로 된 악기를 배우거나 연습할 기회가 없었다.

30대에 들어서서 기타를 하나 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반주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바램에서다. 코드 몇 개 배우다가 말고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하다가, 쉬운 코드 네 개만으로 된 김광석 노래가 있다고 해서, 그거 하나만이라도 배우자고 다시 시작한 것이 몇 해 전이다.

생각날 때마다 10분씩만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고, 덕분에 지금은 두 세 개 곡은 코드 잡는 손을 매번 보면서 확인하지 않아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반주가 되는 화음이 나면서, 연습하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일종의 긍정적 되먹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아가면서 교수로서 연구자로서의 경력이 쌓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게되었다.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던 회사를 떠나면서는 뭔가를 공부하는 일에 큰 열정이나 확신이 없었다. 다만 학위를 받게되면 다른 경력의 경로가 더 열리지 않을까 하는 어찌보면 막연한 생각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내 나름의 연구방향과 주제가 생기고, 그걸 더 깊이 생각하고, 그게 실제로 구현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런 경험이, 기타를 연습할 때 어느 날 부터인가 내 기타 연주에서 들려오는 화음이 꽤 그럴 듯 해지면서, 노래하는 일이 즐거워진 것 처럼, 연구하고 제안서 쓰는 일이 지겨운 반복 작업이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필요한 일들이며, 그 일들로 인해서 다시 내가 관심있고, 해결하고 싶은 일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되는 일종의 긍정의 되먹임 과정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여기 미시간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여름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이 모든 환경과 기회에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끌어올려본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