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 대학원생들

이번 봄 학기부터 한국에서 두 명의 대학원생이 와서 우리 연구실에 합류하기로 했다. 아직 학교차원이나 연구실 차원에서 준비가 미비한 형편이지만 함께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도착한 날 공항에서.
낯선 곳에서 정착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일이라 일단 첫 두 주동안은 신경써주어야할 일이 많았다.
일단 집 문제. 학교 주변의 치안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학생들은 15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장거리 통학을 할 생각으로 집을 구하기를 원했다. 문제는 학교주변과는 달리, 새로 온 외국 학생들이 아파트를 계약하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았다는 것.
아파트 측에서는 월세의 세 배에서 네 배 이상의 월수입을 요구하는데, 대학원생 수입이 그렇게 될 리없고 게다가 은행계좌나 사회보장번호도 없으니 보증인 없이는 아파트 계약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파트 계약을 위해 내가 보증인이 되어야 했다. 
비어있는 아파트들이 많지 않아서 곧바로 이사들어갈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최소한 2주에서 3주 이상 기다려야 했다.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에너지회사로부터 확인번호를 받아와야하는데 이 역시 면허증이나 사회보장번호가 없는 학생들은 여권과 아파트 임대계약서를 들고 회사 사무실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대학촌이 아니니 moving out sale이 있는 것도 아니라 생활용품들을 마련하는데에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먼거리 통학을 해야하니 차가 필요한데, 차를 사려면 보험이 필요한데, 면허증도 없고, 역시나 아무 기록이 없는 외국학생들이 보험을 들기가 쉽지 않으니 역시나 내 이름이 들어가야 했다. 차를 현금으로 사려면 큰 액수의 현금을 뽑아야 하는데, Flint나 Grand Blanc처럼 작은 도시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내가 현금으로 대신 내 주고 돌려받기로 했다.
2000년식 Pontiac Grand AM 모델인데 연식에 비해 상태가 좋다.

은행계좌 개설 문제. 일단 여권만으로도 계좌 개설은 가능한데, 복잡한 용어들과 생소한 금융시스템 때문에 학생들 혼자 계좌 개설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동차 면허증. 다행히 미시간과 한국은 운전면허 상호인증 프로그램이 있어서 면허를 다시 따야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보장번호부터 해서 필요한 서류가 많다. 

지난 2주간의 경험을 정리해본다면 새로 오는 학생들의 경우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차로 통학하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계약 후  최소 몇 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차문제도 그렇고, 은행계좌문제, 자동차면허증 문제, 사회보장번호 받을 때까지의 시간 등등.. 오자마자 아파트에 살려고 하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너무 많은데, 이번처럼 내가 직접 같이 쫓아 다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한 두달 동안 만이라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학교 기숙사나 학교 앞의 Campus Village에 머물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나간 후, 기본 서류들이 준비가 되고 난 후 아파트를 얻든, 차를 사든 하는 것이다.

아무튼 2주간의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이 차를 샀고, 아파트를 얻어 나갔다. 

=======================

한편 연구실에서는 빛이 잘 드는 창이 많은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 기념이기도 하고, 새로 먼 길을 떠나 이곳에 온 두 대학원생들을 환영하는 일을 겸사 겸사해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인사말 하는 학과장, Jim.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다.

기념 사진. 10년 뒤에이 사진 보면서 옛 얘기하게 될 날이 있길…

3년 반

미시간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지났다. 내겐 미국 어디나 마찬가지로 낯설고 물설으니 미시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겠다. 어쨌든 낯선 미시간에 와서, 덜컥 집도 사고, 아이들도 학교를 몇 해째 다니고, 아내도 이런 저런 일을 하게되고,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에서 해야할 일도 많아지면서 그야말로 어느 정도 정착이란 걸 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큰 아이도 대학 준비를 해야할 나이가 되었고, 작은 아이도 이번 가을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입학한 학교를 다니다가 그대로 졸업해 본 적이 없다고 투덜대던 작은 아이 생각이 난다. 바램대로 이제 곧 여기에서 처음으로 입학한 중학교에서 졸업을 처음으로 하게될게다. 큰 아이도 고등학생이 되었고, 별 일이 없다면 이곳을 졸업하게 될게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게될까? 내 기억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아주 어릴적 아련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어쩌면 텍사스에 살던 시절을 고향처럼 기억하게 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하는 식으로 잔소리가 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늘어가는 잔소리만큼 나도 딱 그만큼씩 노인네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왁짜지껄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학교로 출근을 했다. 4, 5년 후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나서고 아내와 나만 넓은 집에 남겨져 있는 상상을 한다. 새털같이 많은 나날들이 지나고 나면 쏜살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