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버리기

자랄 때는 무엇이든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것으로 변명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물건을 버리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아내 덕분에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버리려고 하면 항상 주저하게 된다. 반듯하게 생긴 빈 상자를 버릴 때도 힘들다. 잘 챙겨두면 어딘가 꼭 쓸데가 있을 것만 같아서다.

이렇다보니 잠시만 방심하면 주변이 물건으로 넘쳐난다. 나름 정리한다고 하는데도 연구실에는 물건들이 쌓여간다. 올 초였던가, 작심하고 그동안 꾸역 꾸역 갖고 다니던 책과 잡동사니들을 모두 모아서 내 실험실로 옮겨버렸다. 보관할 공간을 찾으니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더라.

요며칠 한국 여행을 다녀와서 연구실에 앉아서 일을 하다보니, 다시 이곳 저곳에 물건들이 쌓여가고 있다. 생각난 김에 전에 챙겨두었던 folder들도 내다놓고, 일년에 몇 번 쓸까말까한 책상위 전등스탠드도 치워버렸다. 아직도 치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제 시작이다. 버리고 비우는 연습이다.

주말에는 집 정리를 할 생각이다. 이사와서 한번도 정리하지 않은 내 공부방의 closet을 정리할 생각이다. 아내의 조언을 따라 버릴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자. 정말 아깝다고 생각되면 잘 정리해서 보관하기 편리한 형태로 작은 garage에 갖다두자. 해가 지나도 용도가 없다면 그때는 미련없이 버리자.

 

조금 느리게 살기

아마도 그 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같이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치매가 있으셨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돌아가셨다고 한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나중에 듣기로는 옥상에서 떨어지셨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으셨다. 어떻게 된 것인가하면 우리와 같이 사시던 할머니는 사실 큰 할머니셨다. 큰 할아버지 댁에 자식어 없어, 아버지가 큰 집에 양자로 가게된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실제로 큰 집으로 옮기신 것은 아니고, 대를 잇기 위해서 호적상 그렇게 정리를 한 것이다. 듣기로는 큰 할아버지는 소문난 한량으로 이곳 저곳 돌아다니시다가 말년은 울릉도에서 보내셨다. 큰집의 양자가 된 아버지는 그러니까 큰어머니를 모시고 살게된 것이다. 전후 관계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서울에 살게 된 우리 집에 할머니가 늘 계셨다. 말년에는 치매로 어머니를 많이 힘들게 하셨지만, 우리 오남매를 키우실 때 언제나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양반집에서 시집을 오셨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집안 살림에도 품위를 잃지 않으시려고 노력하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에는 제단이 서고, 어머니는 상복에 아침 저녁으로 곡을 하셨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부재가 어린 내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의미, 그렇다면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과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가 가장 먼저 크게 다가온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던 것 같다. 아니 죽음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소멸에 대한 아득한 느낌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라도 삶은 간단히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아주 먼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그때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해내고 마음이 움직이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마음을 따라갔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내가 상처받기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오래 살 것이란 가정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 개체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욕망에 충실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일차적 혹은 이차적 내적 요구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먹고 사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분야나, 호기심에 기반한 과학 활동 같은 것들이 부질없어 보였다.

살다보니 어느 사이 오십 문턱에 왔다. 지금까지 목숨이 부지되는 행운이 내게 주어진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선을 다해 시간을 아끼고 쪼개 썼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때로는 많은 시간을 TV 앞에 앉아 흘려보냈다. 어쩌면 해결되지 않고 쌓여 있는 문제들로부터 일시적인 회피 수단으로 TV 앞에서 멍때리기를 이용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정신이 돌아왔을 땐 폭풍처럼 한꺼번에 많은 일들을 처리하곤 했다. 비록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시간에 쫓기듯 살았다. 멍하니 TV에 코를 박고 있을 때조차 마음 속에는 언제나 소용돌이가 쳤다.

유학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업무와 영어 시험 준비를 비롯한 유학 준비를 병행해야 했으니 늘 정신은 분산되어 있고, 마음은 급했다. 유학을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을 해야했고, 공부도 해야했다. 가끔씩 큰 사고들이 터졌다.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고, 집안 일이기도 하다. 사고 처리도 병행해야했다.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쓰기 시작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항상 시간을 쪼갰고 그 시간에 쫓겼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절박한 마음에 감사하게 받아들인 일이지만 하다보니 연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연구와 수업을 병행하며 나는 다시 또 시간에 쫓겼다. 마음은 늘 바빴지만 때로는 몸이 더 많은 경우에는 내 의지가 따라 주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늘 나를 쫓아왔다.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길다면 주저했다. 시간을 봤고, 마음이 바빴다. 그러다보니 읽어야 할 것들은 쌓여가고 난 그걸 읽을 제대로 된 시간을 찾아내지 못했다.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바쁜 마음이 그것들을 제대로 정리해 줄 수가 없었다.

다르게 살기로 하다.

조금은 느리게 살겠다. 밀린 일이 있어도 읽고 싶은 글이 있으면 마음편히 읽겠다. 마음이 끌리는 주제가 있으면 앞 뒤 너무 재지 않고 그리로 끌려가겠다.

 

신경과학으로 보는 나(자아)

송민령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

자아가 허상이 아니냐 하는 물음이 주는 충격은 애초에 자아의 실상을 상정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는 아름다움을 가정하지 않고는 추함을 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구에서는 분명하게 경계 지을 수 있고, 주변과 떨어져 독립해 존재하는 자아의 실상을 오래도록 믿어왔다.
이는 현상의 경험을 통해 내적 표상을 구축했다고 여기는 대신에,
현상계의 소음에서 독립된, 순수하고 절대적인 속성인 이데아를 상정하는 서구 세계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링크된 글에 들어있는 BBC 다큐멘터리.

https://www.youtube.com/watch?v=FSaqNo1kr2A

한국 여행

지난 삼 주 간 한국에 다녀왔다. 가족 모두가 함께 한국에 다녀오기는 2004년에 유학 떠나온 이후로 처음이다. 큰 아들이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내년에는 작은 아들이 대학에 가게 될텐데,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나면 우리 가족이 함께 한국에 다녀오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해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아이와 아내가 먼지 한국으로 떠나고, 작은 아들과 나는 내 휴가 일정과 아들의 방학 일정을 맞춰 두 주 후에 함께 떠났다. 돌아올 때는 큰 아들은 기숙사에 들어가는 일정 때문에 일주일 먼저 미국으로 오고, 아내와 작은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함께 돌아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만큼 또 알차게 (또는 빡세게) 보낸 삼 주였다.

강릉, 오죽헌, 경포대, 정동진

강릉 경포대와 정동진에 다녀오다. 경포대는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이 아니고, 경포호(바닷가에서 살짝 내륙으로 들어와서 있다)를 내려다보는 곳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다.Honeyview_IMG_20160706_190454Honeyview_IMG_20160706_192254 Honeyview_IMG_20160706_194016 Honeyview_IMG_20160706_194619 Honeyview_IMG_20160707_075002

또한 강릉에는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이야기가 서린 오죽헌이 있다.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는 몽룡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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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에는 하늘과 바다가 아주 어렸을 적에 와 보고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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