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진영을 나누는 기준으로 정치권에서 친/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박근혜 씨와의 갈등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친이/친박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친박연대>라는 기괴한 이름의 정당까지 만들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이명박/박근혜와의 친/소 관계로 국회의원들을 구분하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뭉쳤던 면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새 이 친/반이라는 딱지 붙이기가 언론에서 정치권 인사들을 구분하는 일상적인 방법이 되더니 이제는 아무도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실정이 된 것 같다.
누군가의 존재를 규정하는 말이 다른 누군가와 친한가 그렇지 않은가로 결정된다는 것은 그 효용성을 떠나 그 인격, 아니 인권에 대한 모독이다.
말은 생각을 들여다보는 창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생각을 형성하는 틀이기도 하다. 규정하는 순간 그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예를 들어, 본래 ‘민중(demo)에 의한 지배(cracy)’를 뜻하는 국가 운영 형태인 democracy는 근대 번역 과정에서 ‘민주주의(-主義)’라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이를 통치 형태가 아닌 일종의 ‘이념(-ism)’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의 대립항으로 경제 체제인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나란히 배치하는 전형적인 범주의 오류가 일상적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말이 가진 틀이 개념의 본질을 왜곡한 대표적인 예다.
누군가를 친/반으로 가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가르는 순간 규정이 되고, 더 깊은 사유가 들어갈 틈은 사라진다.
친노/반노, 친문/반문, 친명/반명, 친청/반청… 이제는 뇌에서 아예 거르지도 않고 친/반을 만들어 유통시키고 있다. 반명으로 낙인이 찍힌 순간 그 어떤 해명과 설명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친/반은 누군가가 찍은 낙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친명/반명 논쟁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인지 살펴보자.
윤석열 정권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나 <최욱의 매불쇼>의 예를 들어보자. 이 두 진행자는 어느새 반명의 수괴가 된 것 같다.
당대표 선거에서 대통령의 의중에 있는 인물과 다른 편에 섰다, 검찰개혁입법 국면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폐지 입장이 대통령의 뜻과 다르다, 이재명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못해 저주를 퍼붓는다고 욕을 먹고 있는 유시민에 대한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과 다른 쪽을 택했으니, 반명이고, 반명이니(말은 생각의 틀이란 걸 기억해보자) 이재명 정권의 실패를 바랄 것이니, 싸워 몰아낼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유아적인 논리전개다.
김어준이나 최욱이 언제나 옳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자신의 상황 판단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다. 영향력이 큰 만큼 항상 맞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사안이나 국면에 따라 틀린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반 딱지를 붙이는 순간, 이 사람들은 그 존재 자체가 그렇게 규정되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된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에 대통령의 개각이 있었다. 장관 후보자들은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낙점한 사람들이다. 일부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김민석 당대표도 표시한 적이 있는데,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는 김민석 당대표는 반명인가? 아마도 반명 딱지가 붙었던 정청래 의원이 대표가 되어서, 비슷한 의견을 냈다면 당청 갈등 어쩌고 하면서 친명/친청이란 틀로 또 한 번 떠들썩했을 것이다.
언론에서 친명으로 분류했던 그 많은 의원들이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되어 ‘친’명으로 남아 있는다면, 그 ‘친’명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친’과 ‘반’이 이렇게 그때그때 달라진다면 이것으로 누군가를 규정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내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면 이렇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으니 친노인가? 노무현 임기 내내 그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반노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으니 친문인가? 조국/윤석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결국 윤석열/김건희라는 괴물들에게 나라를 맡기는 상황을 만든 건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라 생각하니 나는 반문인가?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투표한 나는 친명인가? 정청래 대표에게 호감은 있지만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깨끗이 물러났어야 한다고 믿는 나는 반청인가? 김어준이나 최욱, 그리고 유시민이 과가 있더라도 공이 압도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반명인가?
기성 언론의 의제 설정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우리 사회가 나아갈 최소한의 방향마저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언론에서부터 이 유아적인 친/반 규정짓기를 멈추길 바란다. 이 소모적인 낙인을 걷어내야만, 그 자리에 비로소 진정한 토론과 숙의가 들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