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The Company You Keep

FIA (Flint Institute of Art)에서 하는 영화프로그램. 예술영화를 선별해서 매주 상영하는데,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한번 가게되었다.

예술영화라고 보기에는 출연진이 너무나 화려해서 놀랐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을 맡은 작품인데 그 자신을 비롯해서, 닉놀테, 수잔 서렌든 등등.. 왠만한 블록버스터에서도 함께 보기 힘든 대배우들이 출연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늙고 꾸부정하지만 영화에서도 여전히 멋있다. 멋지게 늙어간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멋진 일인 것 같다.

영화는 처음엔 예술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고 보기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대중성도 있고, 재미있었다.

덤으로 20세기초 프랑스 화가 로트랙의 전시회도 열리고 있어서 일석이조.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NLL 문제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과 NLL 문제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건인데,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이 둘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두 사건이 마치 고리로 연결된 것처럼 같이 다뤄지니 하는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Big Data 분석 기법을 이용한다면 상당한 상관관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날 게 분명하다. 이상한 일이다.

NLL문제의 핵심은 “그래서 어쩔건데…”다. 여당의 주장을 다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미 돌아가신 분의 무덤을 파헤쳐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고, NLL 포기 발언이 있었건 없었건 지금 와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후 협상이 틀어져 NLL관련 합의 사항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집권여당에서는 지난 정상회담에서 NLL 포기발언이 있었다고 강변하는데, 백번 양보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걸 파헤쳐서 우리에게 해가 되면 해가 되었지 이득이 될 일은 만무하다. 우리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했다고 확인해주면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득이 될 일은 없는 게 아닌가. 이 문제로 지지고 볶고 해도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일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건이다. ‘설’도 아니고 이미 경찰과 검찰 조사 결과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밝혀진 건이다. 이전 국정원장과 이전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니 조사해서 관련자를 처벌하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다. 이 건으로 왈가왈부 할 일도 없으려니와 진작에 법대로 처리했으면 이미 모두 정리되었을 사안이다.

한국 출장

원광대와 함께하는 과제때문에 한국에 출장왔다. 겨울학기와 봄학기 사이에 지난 학기 성적 처리와 새 학기 수업 준비를 위해 한 주의 짬이 있는데 그걸 이용했으니 원광대에서 일하는 동안 짬짬이 성적처리도 해 주어야 한다.

이번 겨울 학기는 정말 내가 Kettering에 온 이후 가장 바쁘게 보냈던 한 학기가 아니었나싶다.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아 학기 시작하기 전에도 좀 걱정을 하긴 했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벌여놓은 것이 확실했다.

생기는대로 일을 덥석 덥석물지말고 선택에 좀 더 신중하고 선택된 일에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

Flint 공항에서 출발 Detroit 경유하는 Delta항공편인데, Detroit 대기 시간이 거의 6시간 가까이한다. 구리시의 어머니 댁에 도착해서 출발 시간부터 집 도착 시간을 재어보니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토요일에 밀린 퀴즈와 기말고사 채점 마치느라  밤을 꼬박새고 곧바로 비행기에 올랐으니 이틀밤을 꼬박샌 꼴이 되었다.

게다가 비행기에서 떨어져 앉은 어떤 부부가 같이 앉아가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복도쪽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는 바람에 내가 제일 불편해하는  중간자리에 앉아 오느라 비행은 한층 더 힘들게 되어버렸다.

도착하자마자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고 초저녁부터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가 새벽이 잠이 깼다. 한 과목 성적처리 하나 마무리하고 이메일 답장하고 내일 익산에 내려갈 일정 잡느라 지하철 시간표와 열차시간표 알아봤더니 어느새 다시 새벽 6시가 다 되어간다. 잠깐 눈 부쳤다가 아침먹고, 머리 깎고, 익산으로 출발해야겠다.

한국에서 온 대학원생들

이번 봄 학기부터 한국에서 두 명의 대학원생이 와서 우리 연구실에 합류하기로 했다. 아직 학교차원이나 연구실 차원에서 준비가 미비한 형편이지만 함께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도착한 날 공항에서.
낯선 곳에서 정착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일이라 일단 첫 두 주동안은 신경써주어야할 일이 많았다.
일단 집 문제. 학교 주변의 치안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학생들은 15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장거리 통학을 할 생각으로 집을 구하기를 원했다. 문제는 학교주변과는 달리, 새로 온 외국 학생들이 아파트를 계약하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았다는 것.
아파트 측에서는 월세의 세 배에서 네 배 이상의 월수입을 요구하는데, 대학원생 수입이 그렇게 될 리없고 게다가 은행계좌나 사회보장번호도 없으니 보증인 없이는 아파트 계약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파트 계약을 위해 내가 보증인이 되어야 했다. 
비어있는 아파트들이 많지 않아서 곧바로 이사들어갈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최소한 2주에서 3주 이상 기다려야 했다.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에너지회사로부터 확인번호를 받아와야하는데 이 역시 면허증이나 사회보장번호가 없는 학생들은 여권과 아파트 임대계약서를 들고 회사 사무실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대학촌이 아니니 moving out sale이 있는 것도 아니라 생활용품들을 마련하는데에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먼거리 통학을 해야하니 차가 필요한데, 차를 사려면 보험이 필요한데, 면허증도 없고, 역시나 아무 기록이 없는 외국학생들이 보험을 들기가 쉽지 않으니 역시나 내 이름이 들어가야 했다. 차를 현금으로 사려면 큰 액수의 현금을 뽑아야 하는데, Flint나 Grand Blanc처럼 작은 도시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내가 현금으로 대신 내 주고 돌려받기로 했다.
2000년식 Pontiac Grand AM 모델인데 연식에 비해 상태가 좋다.

은행계좌 개설 문제. 일단 여권만으로도 계좌 개설은 가능한데, 복잡한 용어들과 생소한 금융시스템 때문에 학생들 혼자 계좌 개설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동차 면허증. 다행히 미시간과 한국은 운전면허 상호인증 프로그램이 있어서 면허를 다시 따야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보장번호부터 해서 필요한 서류가 많다. 

지난 2주간의 경험을 정리해본다면 새로 오는 학생들의 경우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차로 통학하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계약 후  최소 몇 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차문제도 그렇고, 은행계좌문제, 자동차면허증 문제, 사회보장번호 받을 때까지의 시간 등등.. 오자마자 아파트에 살려고 하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너무 많은데, 이번처럼 내가 직접 같이 쫓아 다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한 두달 동안 만이라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학교 기숙사나 학교 앞의 Campus Village에 머물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나간 후, 기본 서류들이 준비가 되고 난 후 아파트를 얻든, 차를 사든 하는 것이다.

아무튼 2주간의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이 차를 샀고, 아파트를 얻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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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연구실에서는 빛이 잘 드는 창이 많은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 기념이기도 하고, 새로 먼 길을 떠나 이곳에 온 두 대학원생들을 환영하는 일을 겸사 겸사해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인사말 하는 학과장, Jim.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다.

기념 사진. 10년 뒤에이 사진 보면서 옛 얘기하게 될 날이 있길…

어느새 2월말

지난 몇 주는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닥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벌여놓은 일이 많아 한번은 터지지 싶었는데, 바로 그런 상황이 벌여졌었다.

  1. 중간고사 성적처리
  2. 밀린 실험과제 채점하기
  3. 후배와 하는 과제에서 결과내기
  4. 제안서 준비해서 내기
  5. 책쓰기 (세번째 장 마감)
  6. 신임교수 임용 관련 회의/인터뷰
  7. 동료교수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관련 회의/진행
  8. 새로 가르치는 과목 수업준비
  9. 이번 봄과 여름 우리 집에 방문하시는 어른들 일정 확정/항공권 발권
이렇게 몇 주를 후다닥 보내고 나니 벌써 2월말이 되었다. 한국같았으면 봄맞이가 슬슬시작되었을텐데, 미시간은 아직도 한겨울 속이다. 이번 주말부터 다시 온도가 많이 내려간다는 예보다.
주변 사람들 도움 덕분에 그래도 빵구낸 일정은 아직 없고, 이번 주말까지는 쓰고 있는 책의 세번째 장을 마감하는 일만 남았다.
작년에 아버지 건강문제로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일종의 ‘대기’ 상태로 있었던 덕에 아무래도 일을 많이 못했다싶은 생각이 들어서인지 작년말부터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은게다. 이제부터 정리해 나가면서 더 이상 일을 벌이지는 말아야지.
몸으로 때워나기기에는 이젠 몸이 그야말로 예전(?)같지가 않다.

졸업논문 심사

그동안 몇 학생의 학부졸업논문 심사를 하긴 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인쇄본을 받아보게 되었다. 초안을 작성해 오겠다면서 시간약속을 어지간히도 안지키던 학생이었는데, 졸업은 재작년 말에 한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은 학사학위를 졸업 후에 1년이 넘어 받게 되는구나. 내가 굳이 까다롭게 굴지도 않았는데 몇 번 교정본이 왔다 갔다 하다가 1년이 훌쩍 넘어가버린거다. 새 교정본이 올 때마다 기본적인 것도 손을 보지 않았으니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수업을 못 따라오거나 공부를 안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그것보다 해야할 일을 정하고 그에 따른 일정을 관리하는 쪽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무심결에 표지를 넘겨보니 내 이름으로 서명된 페이지가 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걸 줘도 되나 하는 기분이 든다. 과연 이럴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한번도 진지하게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얼치기 선생이 말이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찍혀나온 걸 보고 있자니 뭔지모를 책임감이 뒤늦게 든다. 아.. 이런 기분 싫은데..

3년 반

미시간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지났다. 내겐 미국 어디나 마찬가지로 낯설고 물설으니 미시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겠다. 어쨌든 낯선 미시간에 와서, 덜컥 집도 사고, 아이들도 학교를 몇 해째 다니고, 아내도 이런 저런 일을 하게되고,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에서 해야할 일도 많아지면서 그야말로 어느 정도 정착이란 걸 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큰 아이도 대학 준비를 해야할 나이가 되었고, 작은 아이도 이번 가을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입학한 학교를 다니다가 그대로 졸업해 본 적이 없다고 투덜대던 작은 아이 생각이 난다. 바램대로 이제 곧 여기에서 처음으로 입학한 중학교에서 졸업을 처음으로 하게될게다. 큰 아이도 고등학생이 되었고, 별 일이 없다면 이곳을 졸업하게 될게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게될까? 내 기억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아주 어릴적 아련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어쩌면 텍사스에 살던 시절을 고향처럼 기억하게 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하는 식으로 잔소리가 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늘어가는 잔소리만큼 나도 딱 그만큼씩 노인네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왁짜지껄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학교로 출근을 했다. 4, 5년 후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나서고 아내와 나만 넓은 집에 남겨져 있는 상상을 한다. 새털같이 많은 나날들이 지나고 나면 쏜살같다. 

아버지 생각

아버지 기일이 다가와서일까. 요 며칠 아버지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나 자신이 살가운 아들도 아니었고, 아버지도 대부분의 그 연배 경상도 남자들처럼 자식들에게 별 말씀은 없으신 분이었다.

이제와서 갑작스레 내게 무슨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닐텐데 자꾸만 관속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산소에 마지막에 묻히실 때의 정경이 느닷없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동네 어귀에 있던 정자에 앉아 산책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시던 모습이며, 아무 생각 없으신 듯 무심한 표정으로 TV를 응시하시던 모습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모습들이 자꾸 내 머리 속에 들어 왔다 나갔다를 한다.

이 달 말이면 벌써 아버지 기일인데, 세월이 참 시나브로 흐른다 싶다.

금요일 오후, 올 상반기는 유난히 바쁘게 보내게 될 모양인데, 주말에 해야 할 일이 딱 하고 버티고 있으니, 마음이 주말을 맞는 게 아니라 마치 다시 월요일을 맞게 되는 기분이다.

지붕

지난 주에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더니만 결국 지붕의 일부가 손상을 입은 것 같다. 다른 때보다 유난히 소리가 많이 난다싶었더니 심한 바람에 일부 지붕의 약한 부분이 견디지 못한 것 같다. 멀리서 보면 무언가 얹혀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지붕에 타일처럼 붙어있는 것들이 마치 일부러 조각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멋지게(?) 일어나 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지붕 고치는 사람 연락처를 받아 상황을 보고 연락을 달라고 해 놓았다.

몇 주 전에 자동차 고치느라 2천불 가까운 돈을 치르고 나니, 통이 커져서인지 별로 걱정은 안된다. 말썽없이 잘 고쳐지기만 바랄 뿐이다. 가끔씩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부는 동네이니 튼튼하게 고쳐져야 할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를 수리해야했던 이유는 엔진이 과열되었기 때문이다. 냉각수가 똑 떨어져버렸던 모양이다. 보통은 엔진오일 같은 것 갈 때 보충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직접 확인해보고 채워주기도 했는데, 내가 주로 쓰는 차가 아닌지라 잠시 관리를 소홀히 했더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침에 엔진 과열등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상태로 10마일 정도는 더 운전을 해야했는데, 그 때문에 손볼 곳이 많아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게 되었다. 바로 차를 세우고 견인을 했어야 했다고 수리하는 사람이 충고를 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학교 근처에 자주 가는 수리점이 있어 빨리 손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내 혼자 앤아버를 다녀오는 길에 이런 일이 생겼더라면 아주 골치아프게 될 뻔했고, 그 상태로 계속 운행을 했다면 엔진 수리도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불행중 다행이라 생각한다.

조교수 채용을 위한 전화 인터뷰

우리 과에서 새로 교수를 뽑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과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전기 컴퓨터 공학과” 쯤 되는데 그 중에서 전기 분야 쪽으로 조교수를 채용하려고 하는 중이다. 작년에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나도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연말부터 공고에 들어가서, 올 초부터 위원회는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많은 지원자 중에 최종적으로 열명 남짓한 후보자를 골라냈다. 그 중 절반의 후보자들을 상대로 오늘, 전화 인터뷰에 들어갔다. 
전화를 걸기 시작하니 마치 내가 지원자가 된 듯 살짝 긴장까지 되었다. 한 때 지원자로서 전화 인터뷰에 응했던 때가 갑자기 떠올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경력과 실적을 가진 분들이 많았는데, 내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것은 많은 분들이 상당기간 박사후과정을 하고 있거나, 3~4년의 박사후과정 후에 회사에 취업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분들과 비교해본다면 졸업 후 곧바로 학교로 오게된 나는 정말이지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위원회에서 후보들의 순위를 매겨놓았는데, 대체로 그 순위안에서 상위에 들어가는 분들이 인터뷰 준비도 철저히 했고, 우리 학교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해 놓은, 그러니까 인터뷰 준비가 잘 된 분들이란 것이다.
위원회의 여러 위원들이 의견을 여러차례에 걸쳐 모으니 확실히 좀 더 객관적이게 되는 것 같다. 상위에 올려진 분들이 대체로 무난하게 인터뷰를 진행하셨기 때문에 원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물론 약간의 변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후순위 분이 위로 많이 치고 올라오기는 힘들 지 않을까 싶다. 후보자 입장에선 전화 인터뷰의 특성상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안타깝겠지만, 짧은 시간 관계 상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고 무난하게 인터뷰가 진행되는 경우, 원래 우선 순위가 유지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위원 개인별로 특성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세 명의 온사이트 인터뷰 후보자를 최종적으로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상위 다섯 명 중에서 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후보자 중의 두 명의 한국인 지원자를 내가 위원 자격으로 후보로 추천하고 다른 위원분들의 동의 하에 최종 후보 목록에 올렸다. 한국 분이 오신다면 나로서는 크게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지원자로서의 애타는 심정을 잘 아는 나로선 한 분이라도 더 기회를 드리고 싶기도 했다.
여기 후보들 중에 한분이 최종적으로 우리 학과로 오게된다면, 돌이켜보면 작은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서 어떤 한 개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이런 것들이 점점 더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